이미지 크게보기미사일발사 성공 환영 북한 장거리 미사일인 광명성 4호 발사에 기여한 인사들이 10일 버스로 평양에 도착해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90년대 냉전해체 과정속
주변 핵확산 막기위해
남북 주도권없이 체결

北은 2006년부터 ‘파기’
현상유지 원하는 美中러
여전히 비핵화만 반복

美는 사드·中은 美견제
한반도 생존권은 후순위
정치권 “비핵화 폐기해야”
핵균형론·무장론 봇물

북한의 1∼4차 핵실험으로 1991년 체결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휴지 조각으로 전락했다. 남북이 각각 국회에서 비준한 정식 ‘조약’이지만 사실상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북한이 핵개발 완성단계에 진입하면서 남북 비핵화 선언이 사실상 폐기 단계에 봉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국내에서는 생명력을 잃고 죽어버린 비핵화 선언의 폐기까지 거론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 이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이 그동안 금기시됐던 논쟁들을 촉발하고 있는 셈이다.

◇냉전 해체로 만들어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국제질서 변화의 산물로 평가된다. 남북이 주도적으로 나서 체결했다기보다 미·소간 냉전 종식 기류와 맞물려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변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의미다. 남북은 이어 1992년 1월 20일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 명의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선언 문서는 2월 19일 제6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교환돼 정식으로 발효됐다. 선언은 전문과 6개항으로 구성됐다.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배치하여 설비함),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가 첫 번째 조항이었다.

15년여간 힘겹게 유지돼오던 공동선언은 결국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 10월 9일)으로 깨지는 상황에 이른다. 지난 1월 6일 이뤄진 4차 핵실험에서는 수소폭탄 실험에도 성공했다고 주장해 핵무기 고도화에도 나섰음을 드러냈다. 사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강대국의 파워 게임과 냉전 해체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1년 7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구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Ⅰ)을 체결했다. 이후 미국은 전 세계에서 6000여기의 전술핵을 철수했고, 소련도 동구권에 배치했던 2만5000여기의 전술핵을 거둬들였다. 구소련의 해체를 예견했던 미국 입장에서는 소비에트 연방 국가와 동구권 국가에 흩어져 있는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상응하는 우방국들에 있는 전술핵 철수 조치가 필요했다. 주한미군은 당시 900여기의 전술핵을 운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는 ‘한반도 비핵화’로 포장됐고, 북한은 핵무기 불안 없이 안정적으로 핵 개발에 나설 수 있는 조건을 확보했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미국·중국·러시아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25년이 지났고 북한은 4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그러나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월 5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한다. 협상을 통해 한반도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도 지난 9일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비핵화와 갈등 확산 방지에 대한 기본 원칙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중국과 논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10일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계획은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촉발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논평했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표면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부르짖고 있다. 핵 보유 국가를 선언한 북한에 대해서 중국과 러시어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관심은 근본적인 북한 핵 해결책보다는 방어 목적인 사드 한반도 배치에 있다. 중국의 행보는 미·중대립 구도에서 북한을 ‘꽃놀이패’로 쓰고 있다는 의심은 물론 핵 폐기를 원치 않고 있다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킨다.

◇불붙은 ‘금단의 열매’ 핵균형 논쟁 = 4·13 총선에 출마한 경규상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 상근회담 대표 등 3명의 새누리당 예비후보들은 10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의 인질로 잡혀 있다”며 “19대 국회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비준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과 입장이 이번 총선의 최대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긴급최고위원회의에서 “가공할 공포의 북한 핵과 미사일에 맞서 자위권 차원의 평화적 핵과 미사일로 응징해야 한다”며 핵 균형론을 폈다. 핵 균형론과 핵무장론의 출발점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폐기다. 외교안보 분야 싱크탱크인 세종연구소가 지난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선언 폐기 시 긍정적 요인으로는 △한국 핵개발 족쇄 해체 △평화적 핵주권 확보 △대중국 압박 효과 △북한 핵 실제 대응 행동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비핵확산 정책과 상충되고, 북한에 대해서 비핵화 요구를 할 수 없다는 부정적 요소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교 기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