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추모예배 26일 오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 추모예배에서 참석자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하나회 해체
군대내 사조직 없애
정치·권력 기반 붕괴

금융실명제 단행
‘검은 돈’ 경제 차단
부패 물적토대 와해

역사바로세우기
전두환·노태우 법정에
일제잔재 청산도 앞장

고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민주주의의 대도(大道)를 뚫은 대한민국 첫 문민 대통령이다.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공직자 재산공개, 역사바로세우기가 모두 YS의 재임 시절에 이뤄졌다.

군사적 권위주의 통치시대를 끝내고 문민정부를 세운 것 자체가 현대사의 빛나는 업적이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YS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하고 있다. 본인이 꼽은 최대 치적도 일언 ‘민주화 성취’로 요약된다. 생전의 YS는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은 민주화를 이룩해 낸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나회 해체로 군정 종식·민주화의 길 터 = 군대 내 사조직 해체는 민주주의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군부와 군부에 기생하던 기득권 세력의 정치·권력 기반을 붕괴시킴으로써 군사 권위주의 시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전두환·노태우·정호용 등 육사 11기 주도로 결성된 하나회는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를 주도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YS는 취임과 동시에 하나회를 겨냥했다. 단 며칠 사이에 하나회 소속 ‘별’ 수십 개가 땅에 떨어졌다. 군의 반발에 YS는 “개가 짖는다고 기차가 뒤돌아보지는 않는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저건 나도 쉽게 못할 일”이라고 말할 정도의 대사건이었다.

하나회 해체는 군사쿠데타의 원천을 제거했고 군정을 종식시켰으며 필연적으로 문민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정치학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YS의 군정 종식에 대한 신념과 실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융·부동산 실명제로 검은 경제 차단 = YS는 임기 후반 차남 현철 씨의 국정 개입으로 얼룩지기는 했지만 돈과 관련해서는 누구보다 깨끗했다.

YS의 대통령 공보수석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은 재산 많은 사람은 안 썼다. 돈과 권력 두 가지를 다 가지려는 건 과욕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회상했다.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은 이 같은 정치철학의 경제적 외연 확대로 이해된다. 이들 제도의 도입으로 정경유착의 악습을 막았고 검은돈을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기득권 세력의 물적 토대가 와해됐다.

YS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당시 이경식 경제부총리조차 발표 며칠 전까지 모를 정도로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진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도 많은 반발이 있었지만 평소 “단돈 10원, 동전 한 푼 안 받겠다”고 선언한 원칙 아래에서 단행됐다.

◇쿠데타 세력 단죄 통해 역사바로세우기 = YS는 일제 잔재의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에도 앞장섰다.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초·중·고 교과서에 기술된 5·16 군사정변을 ‘쿠데타’로 수정했다. 5·18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도 YS 정부 시절이다. 역사바로세우기의 화룡점정은 쿠데타 세력 단죄다. 소급 처벌은 안 된다는 법 논리를 깨고 5·18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쿠데타는 쿠데타”라는 말로 보수 진영의 반발을 정면 돌파했다.

3당 합당의 논란이 있었지만 집권 후 이들 세력을 합법적으로 단죄하는 데 성공한 것은 민주주의의 승리로 기록된다. 당시 3당 합당을 반대했던 박찬종 전 국회의원은 “3당 합당을 디딤돌로 YS가 5공 세력을 단죄하고 문민의 틀을 공고히 했다”고 평가했다.
허민 선임기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