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은 ‘통합과 화합’이라는 유언을 통해 정치권에 과제를 남겼다. 3당 합당을 통해 공고화된 지역주의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들이 사라진 자리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다. 지역주의와 리더십 공백은 여야 간의 극심한 대립 정치, 각 정당 내의 계파 분열이라는 고질병을 만들어 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은 현재의 지역 분할적 양당 구조를 만들었다. 이전에도 지역주의에 따른 투표 성향이 있었고, 험난한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지역주의가 민주화 동력을 유지하는 작용을 하기도 했지만, 3당 합당은 이를 우리 정치를 규정하는 틀로 고착화시켰다. 지역 기반에 근거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극한 대립을 통한 편 가르기에 익숙해졌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6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통합과 화합은 김 전 대통령조차 풀지 못한 과제이자 자책일 수 있다”며 “남은 사람에게 숙제를 주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마음속에 38선을 긋고 있는데 어떻게 통합과 화합을 할 수 있겠느냐”며 지역주의 타파 필요성을 지적했다.

고질적인 계파 문제 역시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양김(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떠나면서 카리스마에 기반을 둔 리더십의 시대는 지났지만, 이를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은 형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각 당은 소영주 중심의 계파들이 등장하면서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간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고, 새정치연합은 친노(친노무현)와 비노(비노무현)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민주주의의 질적 성장은 요원한 상태다.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협력할 때는 협력하는 모습은 오히려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김 교수는 “양김이 비단길을 깔아줬지만 현 정치권은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모두 포용하고 협력하는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성진 기자 threem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