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장학재단 사무실 앞에서 재단 업무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이번 His-story의 시작은 이 인물의 경력을 소개하는 것으로 하려 한다. 그는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에서 2년 정도 교편을 잡았다. 그러고는 군에 입대했다. 제대를 하자마자 대학에 진학해 졸업한 뒤 중학교 교사를 3년 정도 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고는 교육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위해 교육 관련 국책 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원으로 일하다 더 넓은 학문을 위해 미국으로 해외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국책 연구기관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그 기관의 수장이 됐다. 그 이후 그는 대학 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교육학회 이사장도 경험했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교육분과 간사도 지냈다. 교육이라는 ‘한 우물’을 파면서 이런 화려한 경력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앞에 열거한 그의 경력은 공개된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그의 모든 경력이 ‘교육’과 관련이 있다. 이 같은 대한민국 교육의 ‘산증인’은 누구일까. 곽병선(73)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1962년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한국 교육계를 지켜본 곽 이사장을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장학재단 회의실에서 만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교사를 거친 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과 원장, 대학 학장과 총장 등 교육 관련 경력이 화려하다.

“충북 청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지역 두 군데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로 만족할 수 없었다.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군대를 갔다 와야 할 것 같았다. 1966년 11월 제대를 했다. 대학입시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더라. 그래도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다.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동기들보다 나이가 네 살이 많았다. 4년이 늦은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부터 서울 동대문구 휘경중에서 3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녀 석사학위를 땄다. 석사학위를 받으니 교육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한국교육개발원에 자리가 났다. 이곳에서 30년 동안 연구활동을 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기억이 나는 것이 있나.

“중학교 담임교사로 일 할 때다. 학생들의 자리 배치에 신경을 썼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짝이 되도록 했다.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지 며칠 안 돼 한 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다. 그 어머니는 시장에서 한참 일하시다가 아들 등쌀에 나를 찾아오신 듯한 차림이었다. 어머니는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시며 앞치마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꼬깃꼬깃 접은 것을 나한테 받아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생선 기름때가 묻은 현금이었죠. 그 순간 ‘아! 저 학생이 나에 대한 감사 표시를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랐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촌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내가 안 받으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단호한 태도였고 거절한다면 어머니를 슬프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드님 걱정 마시고 어서 일하러 가십시오. 어머니의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고 하면서 안심하고 어머니가 뒤돌아 가시도록 했다. 그 학생이 그동안 어떻게 자라서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나, 선생님에게 인정받았다는 감사의 표시를 그렇게 순박하게 어머니를 통해서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지금도 많은 것을 느끼곤 한다.”

―출생지가 중국으로 돼 있다. 특별한 사연이 있나.

“1942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남동부에 있는 무단장(牡丹江)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께서 1920년대 중반 일제의 압제를 피해 만주라고 불리는 지린(吉林)성 룽징(龍井)으로 이주해 유민의 삶을 시작했다. 기록에는 없지만, 이곳에 살면서 큰아버지께서 독립운동을 하다 19세에 일본군에 잡혀 돌아가셨다. 무장 독립군을 돕는 역할을 하다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고모부(박동권)가 무장 독립군을 이끌고 다녔다고 들었다. 큰아버지도 고모부와 함께 활동하셨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달 반 만에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래서 무단장으로 이주해 농사를 지으셨다고 들었다. 그곳에서 해방 때까지 머물다 1946년 겨울에 북한을 거쳐 충북 충추시 삼척면 석천리 석문동으로 이사해 정착했다.”

―교사가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버지께서 무단장 사범학교에 진학하려 하셨는데 못 갔다. 홀로 되신 할아버지를 봉양하느라 교사의 꿈을 못 이룬 것이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교사가 됐다.”

곽 이사장은 자신이 겪은 젊은 시절의 좌절과 갈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교육자의 길을 접고 회사원이 됐던 일,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들을 설명하며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대학 시절 아버지께서 사업의 부도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데 대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지 않나. 고난은 젊은이를 단련시키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신뢰하고 목표를 놓치지 말고 이를 이룰 때까지 실패를 두려워 말고 노력하고 땀 흘리는 자체에 최선을 다하면 설사 바라는 결과가 오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 본다. 교육자의 길을 접고 신진자동차, 농협 등에 근무한 적도 있다. 하지만 교육자라는 꿈을 찾아 다시 돌아와 이 자리까지 왔다. 내가 취업을 할 때도 현재와는 비교가 안 되지만 상대적인 취업절벽이 있었다. 너무 좌절하지 말고 노력하면 된다. 옛날보다는 기회가 많은 사회이니 꿈과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곽 이사장은 자신이 일하는 한국장학재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대학생들에게 ‘반값 등록금’을 실현해 주는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조직이라고 말한다. 그는 “경제상황이 썩 좋지 않지만, 올해 재단 예산 규모가 서울과 경기를 제외한 어느 광역지방자치단체보다 많은 10조 원대”라며 “이 같은 재원 규모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선진국 수준이며 나라가 미래세대를 위해 과감하게 선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졸업과 함께 학자금 대출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많다.

“학자금 대출 채무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대학생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이를 위해 일정 기준 이상의 소득발생 시까지는 상환이 유예되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 저소득층에 대한 특별상환유예나 연체자에 대한 이자유예 등 여러 가지 제도를 나름대로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자부담 경감을 위해 군복무기간 이자 면제 및 저소득층 이자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상환이 어려운 학생을 위해 대출기간조정, 특별상환유예 및 프리워크아웃제도 등 사전적으로 채무조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의 무분별한 대학 선호 및 선택, 도덕적 해이의 방지를 위한 책임감 제고를 비롯해 대학의 등록금 인하 및 장학금 확충과 국가 재정건전성 확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학자금지원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근본적으로는 꿈과 끼에 바탕한 중등교육으로의 개선, 고등교육의 수요 및 방향, 그리고 역할에 대한 개인적·사회적·문화적 인식이 실용적인 측면에서 재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곽 이사장의 좌우명은 ‘영원한 진리, 위대한 조국, 청순한 사랑’이다. 그는 “무슨 뜻을 가지고 공부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을 분명히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구상한 것을 그렇게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순한 사랑’을 좌우명에 넣기도 했지만 어느 일간지에는 이성선의 시 ‘나의 집2’도 나를 흔든 시 한 줄로 추천하기도 했다. 곽 이사장은 “들어내 놓고 말할 정도의 문학적 감성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감성의 세계가 인간됨을 형성하는데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고 웃음 지었다.

인터뷰 = 신선종 차장 (사회부) hanul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