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굳은 표정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둘러싼 여권 내부 갈등과 경제 장기침체 등을 우려하는 듯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불신임’이미 밝힌만큼 정치공방서 한발 비켜나
경제활성화 대책 관련 “타이밍 중요하다”강조
규제개혁 법안처리 등 국회서 발목잡지말라 의미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도 논란이 되고 있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하반기에 추진해야 할 핵심 개혁과제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 소비 진작 등 경제 활성화 대책 등 당면한 정책 현안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이날 오후 새누리당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가 논의되는 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통해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실상의 불신임 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박 대통령이 정치 공방에서 한발 비켜선 채 새누리당의 논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약 15분 30초 동안 청와대 참모들을 향해 모두발언을 쏟아냈다. 약 16분에 달했던 지난 25일 국무회의 모두발언과 길이 면에서 별 차이가 없었지만, 내용은 천양지차였다. 25일 발언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약 12분 동안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이를 통과시킨 여야의 행태, 특히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여당 원내지도부의 행태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것과 달리 이날 회의에선 정치적 발언은 거의 없었다.

굳이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찾는다면 메르스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이 절실하다고 강조한 대목이 유일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연초부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메르스와 극심한 가뭄 피해가 겹치면서 충격이 커지고 있다”며 “우리 경제를 정상 궤도로 복귀시키고 소비를 비롯해 일상적 경제활동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과감한 소비 진작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경제 활성화 대책을 거론한 뒤 “타이밍을 놓치면 재정은 재정대로 들어가면서 효과는 못 낸다”며 “이건 속도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한 ‘덩어리 규제’ 혁파의 시급성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정부가 마련한 메르스 추경안에 대해 국회가 제동을 걸지 말고 산적해 있는 규제 개혁 관련 법안들의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새누리당이 자체 논의에 들어간 상황에서 거듭된 입장 표명으로 얻을 게 없다는 판단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명확하게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공이 당으로 넘어간 상황 아니냐”며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정쟁의 중심에 서는 것처럼 비치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도 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