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嫌韓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도쿄 일본 외무성에서 개최된 21일 오후 극우단체 회원들이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일본 측 주장을 담은 플래카드를 들고 반한 시위를 벌이자 경찰들이 현장에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일 양국이 22일로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박근혜-아베 신조(安倍晋三)시대 한·일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의 상태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22일, 한국에서 보는 일본,일본에서 보는 한국의 실태와 현황을 비교해 본다.

① 양국관계 ‘현주소’… 일본인이 보는 한국

“이제 일본에서 한국이라고 하면 뉴스거리도 되지 않고, 혐한(嫌韓) 서적조차도 잘 팔리지 않는 무관심의 상태입니다.”

지난 18일 일본 도쿄(東京)의 이케부쿠로(池袋) 지역에 위치한 대형 서점에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큰 인기를 끌었다던 혐한 서적 코너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점 직원에게 혐한 코너가 어디인지를 물었지만, 혐한 코너 대신 일부 혐한 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의 위치를 알려줄 뿐이었다. 듣던 대로 혐한 열풍이 한풀 꺾였으니, 다시 한·일 관계는 장밋빛 미래를 기대해도 좋은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내막을 알고 나니 한·일 관계는 혐한의 여파보다 더 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도쿄의 외교소식통은 “요즘 일본에서는 혐한 서적은 물론 TV든 신문이든 한국 관련 소식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한국이란 소재 자체가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꼭 50년이 되는 22일, 일본 현지에서 전망되는 한·일 관계 향후 50년은 불투명할 뿐이었다. 일본에 이미 한국은 우호를 증진하고 외교관계를 심화시켜야 할 국가라기보다 그저 바로 옆에 있는 이웃 나라일 뿐이었다.

같은 날 오후 도쿄의 한국인 밀집지역인 신오쿠보(新大久保) 지역. 많은 한류 팬들이 신오쿠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학생들은 한국의 한 걸그룹 멤버 가운데 누가 최고인지 설전을 벌이기도 했고, 한국음식점에서는 일본인 여성들이 보란 듯이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류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다는 다행스러운 심정도 잠시뿐, 한국에 대해 잠깐의 대화를 나눠보자 금세 한류 팬은 한·일 관계와 크게 관계없는 사람들이란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국 음반 가게에서 아이돌 그룹의 음반을 살펴보던 한 여고생에게 ‘요즘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가 별로 안 좋다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그 학생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라는 엉뚱한 대답을 들려줬다. 신오쿠보의 한 상인은 “한류는 한·일 관계와 크게 관련이 없는 일종의 유행 같은 것”이라며 “한류 연예인에 대한 인기가 꺼지면 한류 팬도 사그라질 것이란 불안감은 있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에 대한 이해 없이 한류를 좇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는 일본인들도 한·일 관계에 대해 이해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19일 국지성 호우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궂은 날씨에도 야스쿠니신사에는 참배객이 줄을 이었다. 점심시간을 맞아 산책하듯 신사를 찾은 이들도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교복을 입고 찾아온 학생들도 있었다. 단체 관광차 도쿄를 찾은 것으로 보이는 일본인 무리도 우산을 받쳐 든 채 야스쿠니신사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최근 일본의 2차 세계대전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신사 내 박물관 ‘유슈간(遊就館)’에도 유료관람인 점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일본의 총리 등 정치지도자가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면 왜 한국이나 중국, 심지어 미국도 비판하는지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었다.

일본 사회에서 이처럼 한·일 관계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배경은 한 일본인 중학생이 최근 도쿄신문에 기고한 글에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학생은 지난 10일 도쿄신문에 게재된 칼럼에서 “한반도에서 한자와 불교가 전해졌다는 것과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병합했던 사건 등을 이제야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한·일 관계에 대해 아주 기초적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알지 못한 채 한국의 계속되는 과거사 사죄 요구와 역사 왜곡 논란을 지켜봤으니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것을 넘어 관심을 두는 것조차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일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도쿄=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