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동병상련 미국을 방문 중인 위안부 생존자인 이용수(88·가운데) 할머니가 30일 뉴저지주 해켄색의 버겐카운티 기림비 앞에서 나치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에델 케츠(92·왼쪽), 애니타 와이즈보드(92·오른쪽) 할머니와 담소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일제의 만행에 대해 한 마디도 안 했지만 그가 공식 사죄할 수 있도록 계속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韓, 日비판 성명수준 그쳐
“아베연설 유감” 되풀이뿐
기존외교 방식 탈피 시급

미·일 신(新)동맹 시대 개막으로 현행 동북아 질서에 대변화가 예고되면서 박근혜정부의 대일·대미 외교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과거사 사죄를 거부하면서 정부의 물밑 압박 외교가 실효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외교가에서는 팽배해지고 있다. 정부가 아베 총리의 연설과 미국의 일본 편들기를 방치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아베 총리가 방미를 통해 왜곡된 역사 인식을 홍보하는 데 성공한 반면, 정부는 논평·성명 수준에서 일본을 비판하는 정도에서 머물렀다.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 ‘현상 변경’을 먼저 시도한 만큼 정부 역시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빠르고 창의적인 외교를 통해 공세적으로 맞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미 순방 행보에 대한 외교부 대응이 판에 박힌 반응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외교부가 대변인 성명 형식으로 공식 반응을 낸 것은 30일 오후 3시로, 아베 총리의 연설 개시로부터 무려 15시간이 걸렸다.

외교부가 한·일 및 한·미 관계를 고려하면서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지만 동시에 딱 떨어지는 정책 기준을 가지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 사죄를 안 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대응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비판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외교부 내부에서도 형식과 내용을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 역시 ‘유감’ 수준으로, 이전 성명·논평보다도 낮았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진정한 사과도 없었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12월 아베 3기 내각 출범 이후 각종 도발에 대한 비판 수위에서도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외교부는 지난 2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독도 도발 행사에 대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며, 역사 퇴행적 행위”, 4월 22일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공물 봉납에 대해서도 “깊은 실망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면서 비판한 바 있다.

정부는 과거사·영토 문제와 안보·경제는 분리해 대응한다는 ‘투 트랙’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외교가에서는 미국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아베 총리 ‘편들기’에 나서고 있는데도 정부가 ‘속수무책’이라는 점에서 박근혜정부의 대미 외교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큰 틀의 전략 부재에 따른 혼란으로, 오는 8월 15일 종전 70년에 나올 아베 담화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아베 총리의 미국 의회 연설이 상황의 끝은 아니며, 다양한 계기에 일본이 사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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