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8일 강남구민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매입한 한국전력 부지 개발과 관련 지구단위계획구역 확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이 사들인 한전부지의 개발구역 확장을 심의하는 도시건축공동위원회가 열린 지난 8일, 서울시청 앞에서 경찰과 강남구 주민들 간 격렬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붉은 글씨의 ‘결사반대’ 머리띠를 두르고 시청 앞으로 몰려든 200여 명의 주민은 “서울시가 강남구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한전부지 일대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잠실까지 확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지금이라도 개발 당사자인 강남구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6일에 이어 이날 두 번째 기습시위를 벌인 강남구 주민들은 심의위원회 개최를 막기 위해 청사 입구 곳곳에 차량을 세우고 심의위원들의 입장을 저지했다.

주민들은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청사 안으로 진입하려다 이를 막아서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1차 항의 방문 때는 신연희 강남구청장도 함께 시청을 찾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선희 신사동 주민자치위원장은 “한전부지 개발로 인해 생기는 공공기여금을 강남구 취약시설 구축이 아닌 잠실종합운동장 리모델링에 우선 투자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면서 “강남구민들을 위해 우선 사용하고 그다음에 다른 지역에 쓰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한전부지 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서울시와 강남구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강남구민들이 청사를 항의 방문한 8일 삼성동, 대치동 일대 ‘종합무역센터 주변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을 잠실운동장까지 확대하는 계획(안)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당초 코엑스 일대였던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잠실운동장과 탄천 일대까지 확장됐다. 강남구는 “서울시가 강남구민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독단적 결정을 내렸다”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한전부지 개발을 두고 서울시와 강남구가 이처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유는 바로 한전부지 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공공기여금’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사들인 한전부지는 기존 용도대로라면 최대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의 비율)이 250%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현대차가 공공기여금을 내는 조건으로 용적률을 최대 800%까지 올려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기여금은 부지 감정가의 40% 수준으로 서울시는 현대차로부터 약 1조5000억∼2조 원가량의 공공기여금을 받아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기업이 납부한 공공기여금은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자치구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 최근 심의를 통해 지구단위계획구역이 잠실운동장까지 확대되면서 서울시는 한전부지 개발로 얻은 공공기여금을 송파구에도 쓸 수 있게 됐다.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구역의 확장을 통해 현재 추진 중인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면서 “국제업무뿐 아니라 문화·편의시설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민간을 통해 확보한 공공기여금을 국제교류복합지구 조성사업에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강남구는 “서울시가 당초 예정에도 없었던 잠실운동장 일대를 지구단위계획구역에 포함시킨 것은 공공기여금을 다른 지역에 사용하기 위한 꼼수”라면서 지구단위계획구역 확대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최주학 강남구 도시계획과장은 “잠실운동장은 국유지이니만큼 해당 지역 개발재원은 서울시의 공공 재정이나 민간투자사업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 옳다”면서 “이번 공공기여금은 한전부지 개발로 인해 교통체증, 환경문제 등 직접 피해를 보는 강남구민들을 위해 쓰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강남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공공기여금을 먼저 사용한 후에 남은 재원의 사용처를 검토해야 한다”면서 “서울시가 강남구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 결정을 내린 만큼 법적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주민대표 기구인 강남주민자치위원연합회도 “한전부지 개발문제를 두고 당사자인 서울시가 강남구민들의 의견수렴이나 공청회 개최 등 소통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다”면서 “지구단위계획구역 확장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한전부지 개발에 대한 협상 테이블에 강남구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구단위계획구역 확장에 대해선 이미 주민공람과 부서협의를 끝낸 문제라면서 절차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용학 서울시 도시재생본부 동남권공공개발추진반장은 “지구단위계획구역 확장 문제에 대해선 이미 주민공람 등 관련 절차를 마쳤다”면서 “특히 한전부지 개발로 발생하는 공공기여금을 잠실운동장 리모델링 등에 사용한다는 것은 지난해 4월 국제교류복합지구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미 밝힌 내용”이라고 말했다. 김 반장은 “올해까지 그 어떤 민원이나 불만 제기도 없다가 공공기여금 협상이 시작되자 반대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특히 공공기여금 규모를 두고 현대차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있는 서울시 입장에선 강남구의 반대가 야속할 수밖에 없다. 김 반장은 “서로 협력해 현대차로부터 유리한 협상을 받아내야 하는데 오히려 강남구의 반대로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면서 “사전협상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사용처를 두고 다투는 것은 결국 협상에 악영향만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반장은 또 “한전부지 개발은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계획 아래 추진된 것인 만큼 이에 포함된 잠실운동장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한전부지와 잠실운동장을 단순히 강남구의 땅, 송파구의 시설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서울시의 발전이 곧 지역의 발전이라는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

다만 서울시는 주민들의 반대가 있는 만큼 주민대표와 구의원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이해관계가 얽힌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득을 계속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