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병참기지론’ 제창한
스즈키 다케오 등이 주장
대동아공영권 논리로 이어져

일본이 주미·주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와 미국 CNN을 통해 유포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아시아 경제발전 기여론’의 뿌리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35년간의 한반도 식민지배에 대한 정당화 논리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중국과 동남아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를 서구 제국주의에서 해방시킨다면서 내놓은 ‘대동아공영권’과도 논리적으로 연결된다. 일본이 실제 한반도와 중국·동남아 각지에서 추진한 점령 정책은 서구 제국주의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비인도적이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이 같은 주장도 변형된 과거사 왜곡과 다름없다.

일단 일본이 한반도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은 기본적으로 조선 왕조와 구한말의 정치변혁 및 경제발전 가능성을 부인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조선에는 변혁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조선 정체론’, 조선 왕조의 무능과 부패로 패망이 필연적이었다는 ‘조선망국론’ 등이다. 또 경제적으로는 조선에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는 부르주아지로서의 ‘경영형 부농’이 없다는 ‘소농사회론’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대표적 이론가는 ‘식민지조선 근대화론’을 주창한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 전 경성제대 교수다. 1935년부터 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로 경제학을 가르쳤던 스즈키 교수는 1940년대 ‘대륙병참기지론’, ‘북조선 루트론’을 제창한 조선론의 권위자다. 스즈키 교수는 전후에 “일본의 한국 통치 기간을 통해 한국의 산업경제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을 내놓았고, 이게 ‘식민지근대화론’의 뿌리가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일본의 이 같은 논리는 식민지배 통치를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 평가다. 분명 조선 말기와 구한말에는 갑신정변(1884년)과 동학혁명(1894년), 고종의 광무개혁(1897년) 등 위·아래로부터의 개혁 움직임이 엄연히 존재했다는 점에서다. 조선 말기에도 이미 자본주의로의 성장이 가능한 싹이 있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 해방 이후 한국의 고도성장은 한국 사회의 내부 요소에 따른 것이라는 ‘내재적 발전론’ 등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제의 식민 지배에 따른 수탈로 인해 성장은커녕 경제적으로 위기를 겪었다는 ‘식민지 수탈론’은 방대한 실증적 수치로 뒷받침되고 있다.

피식민 기간에 조선의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조선인의 GDP는 증가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미약했던 성장도 1941∼1945년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면서 급락했다. 허수열(경제학) 충남대 교수에 따르면 1946년 1인당 GDP는 해방 전 정점 시점과 비교할 때 43.5%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 해방 당시 일제의 공업 자산 중 남한에 있었던 것은 전체의 25%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전후 유일하게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의 성장 사례를 설명하기에도 역부족이다. 남한보다 일제의 산업 시설이 훨씬 많았던 북한의 경제가 추락한 것도 설명할 수 없다. 관건이 일제의 자산 투자 정도가 아니라, 전후 남북 간 정치제도, 리더십, 경제정책 차이였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박정희정부 당시의 경제정책을 예로 들며 “경제발전에서의 차이는 결국 리더십에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