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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국회 상임위원회가 국회 파행을 핑계로 중요 법안에 대한 심사 및 처리 업무를 사실상 중지하는 등 ‘놀고먹자’식 직무유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경제 살리기 30개 주요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하는 등 대부분이 본회의 문턱인 법제사법위원회에도 올라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가 29일로 150일째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무능·식물 국회’로 전락한 데에는 국회 상임위의 직무유기가 큰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는 이날 새정치민주연합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농림축산해양식품수산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위원회를 가동하는 등 일부 상임위가 정상 가동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그동안 원내 투쟁을 하던 야당이 “긴급 현안에 한해 상임위에 복귀한다”며 이날 정기국회 개회 이후 처음으로 상임위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정쟁에 묻혀 입법 의무를 잊은 지 오래라는 여론의 압박에 따른 야당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경제를 살릴 30개 경제 활성화 법안 등 중요 법안은 모두 해당 상임위에 계류 중이거나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낮잠’을 자는 등 연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고, 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를 허용하고 원격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도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또 학교 근처에 관광호텔을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등도 상임위 또는 법안심사 소위 등에서 논의조차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에 합의하더라도 법안 처리를 위한 상임위 가동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법안 소위가 제대로 구성돼야만 경제 활성화 및 민생법안 등 소위 단계에서주요 쟁점 법안의 논의가 시작될 수 있지만 일부 상임위원회는 아직 법안을 심사할 법안심사소위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의 뭇매에 못 이겨 상임위가 정상 가동되더라도 주요 민생 법안에 대한 여야 간 시각차가 워낙 크다. 이에 정부와 여당이 강조한 30개 경제 살리기·민생 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선 처리를 요구한 경제살리기 법안 30개를 비롯해 국회 본회의에 계류 중인 비쟁점법안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청와대와 정부가 요청한 법안 중 상당수가 알맹이가 없는 가짜 민생, 규제 완화 법안”이라며 부동산 관련 법안과 의료·사행산업 관련 법안들은 논의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일부 온건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월호특별법과 민생·경제 법안 분리처리 요구도 있지만 대체로 세월호특별법 우선원칙을 견지해 정기국회 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국회에 제출된 새해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세법개정안 처리에도 차질이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올해부터 12월 2일 본회의 이전까지 여야가 새해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세법개정안에 합의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정부안이 상정될 예정이어서 자칫하면 부실·졸속 예산·세법심의 재연도 우려된다.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