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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야구선수 덕분 비거리 270야드 가뿐

“골프장 해프닝요? 라운드 중에 응급 수술환자 전화를 받고 짐싼 일이죠.”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서울연세병원의 조상현(43) 대표원장은 골프 게임 도중 몇 번이나 ‘실례’를 한 경험이 있다.

모처럼 주말이나 휴일에 지인들과 운동하러 나갔다가 지난밤에 수술한 응급환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서는 도로 짐을 싸서 병원으로 돌아간 것이다.

“수술 받은 환자의 마음이 오죽하겠나. 당장 응급을 요하는 건 아니었지만 환자를 진정시켜야 했다. 모처럼 시간을 내준 지인들에게 송구해도 어쩔 수 없이 도중에 짐을 싸서 병원에 돌아간 일이 몇 번 있다.”

조 원장은 국내 의료업계에선 드물게 재건성형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손가락 등 절단된 신체 부위를 미세접합하거나 얼굴 외상을 치료하는 분야다. 성형이지만 미용 목적의 성형과는 다르다.

특히 24시간 응급시스템을 운영 중이어서 주말이나 휴일이 따로 없다. 하루 3시간을 잠자기도 바쁜 그가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환자를 돌보면서 지치고 힘든 심신을 충전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골프를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됐다.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즈음부터 골프를 배웠으니 이미 구력이 10년이 넘었다. 스스로를 ‘보기 플레이어’라고 부르며 나름대로 ‘골프 마니아’임을 자처한다.

조 원장의 최고 기록은 85타. 군의관 시절 경남 김해에 있는 군비행장 부설 골프장에서 달성했다.

“한창 잘 칠 때는 80대 중·후반을 오르내렸다. 주변에서 잘 친다는 소리를 좀 들었다. 그러나 재건성형 병원을 운영한 이후 지난 4년간은 3개월에 한 번 필드에 나가기도 힘들었다.”

그 3개월 만에 한 번 있는 기회 중 최근 경기가 지난 8월 말에 있었다. 의료업계 지인들과 경기 용인의 한성골프장에서 게임을 했다. 그런데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그립 감각이 형편없고 스윙이 생각대로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90대 후반을 치며 체면치레만 했다. 2012년 경기 파주의 서서울골프장 6번홀에서 이글을 한 이후로 80대 후반 기록이 가물가물해졌다.

하지만 비거리만큼은 여전히 자신있다. 약 270야드쯤 공을 날려보낸다. 여기엔 나름의 비결이 있다. 야구 선수 활동 덕분이다.

의대 재학 시절에 야구 동아리 활동을 했다. 포수이자 4번 타자였다. 그때도 아마추어치곤 “야구 좀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야구는 움직이는 공을 가능한 한 멀리 쳐내는 것이라면 골프는 정지된 볼을 정확하게 멀리 보내는 운동이다. 그는 야구 선수로 활동하면서 몸에 익힌 장타력이 골프의 긴 비거리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다.

처음에 골프를 배울 때 우연찮게 ‘고수’에게 배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 광안리 골프연습장에서 티칭프로에게 배웠다. 그 티칭프로는 프로선수 김미현을 지도한 프로골퍼에게 배운 강사였다. 스윙할 때 의식적으로 왼쪽 팔을 곧게 펴는 것도 다 그때 공들여 익힌 것이다.

그리고 미처 필드에 나갈 짬이 없을 때는 병원 근처에 있는 돔연습장을 찾는다. 거기서 1∼2시간 정도 땀을 흘리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다. 하루 종일 의자나 수술대에 앉아있던 피로감도 말끔히 날려버리기에 손색이 없다.

징크스는 별다른 게 없다. 다른 골퍼들과 마찬가지로 연습 때 잘 맞으면 필드에서 덜 맞는 것 같고, 연습 때 잘 안 맞으면 반대로 필드에서 잘되는 느낌이다. 결국 욕심을 내지 않는 게 타수를 낮추고 골프를 즐기는 지름길이다.

골프 마니아답게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탱크’ 최경주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경한다. 2009년에 최경주를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 출전 중이던 최경주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인식당에서 마주쳤다. 조 원장은 의료 세미나 참석차 간 길이었다. 초면이었지만 용기를 내서 인사했다.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아직도 자랑스럽게 조 원장의 페이스북에 걸려 있다. 최경주는 당시 우승컵을 들어올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최경주 선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가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는 ‘잡초, 계단, 빈잔의 철학’을 존중한다. 평소 빈잔을 채우는 기분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말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조 원장은 환자를 돌볼 때도 최경주에게서 받은 영감을 잊지 않는다.

“의사란 아프고 다친 사람들을 돌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의사는 환자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곤하고 지칠 때 과연 이 길이 맞나 하는 후회도 들었으나 지금은 매우 보람차게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의사로서의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잊지 않고 싶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조상현에게 골프란 =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 운동이다. 일상생활처럼 모든 걸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물 흐르듯 편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