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8월 27일 충남 예산군 오가면 오가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농업인행복버스’ 행사장에서 이동필(왼쪽 두번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황선봉(오른쪽 첫번째) 예산군수 등이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지역 농업인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심만수 기자 panfocus@munhwa.com

지난 8월 27일 오후 충남 예산군 오가면 오가초등학교 체육관 안팎이 시끌벅적하다. 주변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오토바이나 자전거, 봉고차 등을 타고 줄지어 모여들었다. 추석을 앞두고 전국에서 알아주는 ‘예산 사과’ 수확이 한창인 어르신들이 바쁜 일손을 멈추고 이곳에 들른 것은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농업인 행복버스’가 서울에서 자원봉사 인력을 싣고 처음으로 오가면을 방문한 것이다.

농업인 행복버스는 지난해 시작된 이후 4만 명 이상의 농업인에게 의료·문화·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농협의 대표적인 농업인 복지 프로젝트. 이날도 서울 목동 힘찬병원 의료진과 NH개발이 후원하는 장수사진 촬영팀 등 20여 명이 ‘행복버스’편으로 이곳을 찾았다.

엑스레이 촬영장비, 물리치료 장비 등을 싣고 온 힘찬병원 진료팀은 도착하자마자 체육관 안에 접수대와 장비 등을 설치했다. 이날까지 4번째 행복버스 봉사를 나온다는 무릎분야 전문의 이상훈(40) 과장은 “농촌지역 노인들 일부는 자식들이 외부에 나가 있고 우수한 의료기관도 접근하기 어려운 사정 등으로 제때 치료를 못받고 방치된 분들이 있다”면서 “여기서는 엑스레이 사진 등을 통해 질환의 진행 정도와 대응 방안 등을 알려드리고 약간의 약, 물리치료 등을 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다리고 있는 안현순(여·80·예산군 오가면 원천리) 씨가 이 과장 앞에 앉았다. “무릎이유? 그냥 대닐만 혀유. 가만히 있으면 괜찮구…근데 가끔 뻐근하고 쑤시구 농사일 할 땐 힘들어유.”(안현순 할머니) “연세가 드셔서 연골이 많이 닳았어요, 오른쪽 다리가 더 심한편이구요, 물차고 붓는 것은 아니니까 보전적 치료 받으세요.”(이상훈 과장)

조금 떨어진 체육관 연단 위 물리치료실에선 매트리스 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적외선 치료, 전기 치료, 공기압 치료 등 각종 물리치료를 받으며 연신 “시원하다”를 연발하고 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허은지(27), 이아영(26) 치료사도 부지런히 이 매트 저 매트를 돌면서 어르신들을 돌보고 있다. 이 치료사는 “오늘 처음 자원봉사에 참여하는데 80여 명의 어르신들을 치료해드렸다”며 “5년간 병원에 근무하면서 제 직업을 통해 처음하는 재능기부인 셈이어서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흐뭇해 했다.

매트 위에 엎드려 전기치료를 받고 있는 유근수(84·예산군 오가면 원천리) 씨는 “평생 농사일만 하다 보니 무릎, 허리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고 집사람도 골다공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서울 병원의 의사들이 이렇게 무료로 치료해 주니 고맙다”며 “아내도 함께 왔는데 농협이 제공하는 농업인 행복버스가 우리 오가면을 찾아줘서 잔칫날에 온 기분”이라고 말했다.

체육관 안쪽으로는 NH개발이 후원하는 장수사진 촬영 스튜디오가 차려져 있고 옆에 자리잡은 간이 미용실과 의상실에서는 촬영을 준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꽃단장’에 한창이다. 헤어디자인과 메이크업을 맡은 박애란(51) 씨는 드라이 빗으로 ‘뽀글 파마’인 할머니의 머릿결을 단아한 ‘여사님 머리’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이어 눈썹펜슬, 립스틱을 곱게 칠하고 미리 준비된 하늘하늘한 한복을 입으면 ‘변신 끝’이다. 이영자(여·75) 씨는 “머리도 하고 화장도 받으니 20년은 젊어진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NH 측 후원으로 장수 사진 봉사를 다니고 있는 사진 작가 강경석(55) 씨는 “독사진도 찍고 부부 사진도 찍어 액자까지 넣어 배달해 드리는데 무료인데다 ‘영정 사진’찍으러 가자는 말을 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자식들도 좋아한다”며 “시중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보다 훨씬 젊게 잘 나왔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오가면 원평리에서 행사장을 찾은 김시환(79) 씨는 “이런 행사들이 한 번 열릴 때마다 동네에 활력이 넘치고 나라에서 우리를 신경써주는 것 같아 흐뭇하다”며 “추석을 앞두고 농사일에 하루가 짧지만 모든 일을 제쳐 두고 오가면 전체 농업인들이 행사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도 격려차 현장을 찾았다. 이 장관은 “어르신, 안녕하세요. 농사짓느라 고생 많죠?”라고 인사했다. 주민들은 “취재진과 함께 온 장관 덕분에 TV에 얼굴 나오겠다”며 반겼다. 이 장관은 “농업인 행복버스를 지난해 9번 시범 운행했고, 올해 50번 운행할 예정”이라며 “규모는 작지만 농업인들이 직접 체험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농협 관계자는 “농업인 행복버스가 열리는 마을은 매년 초 지역농협의 신청을 받아 선정한다”며 “산간오지, 도서지역 등 의료 문화 혜택의 소외지역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고 있지만 반응이 뜨거운 만큼 더 많은 곳을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예산 = 김창희 기자 ch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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