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파벌정치가 한·일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한·일 간 갈등이 주로 역사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에 자민당이 주축이 된 보수적인 정권일수록 이 같은 갈등은 빈발했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일수록 적었다는 경향성은 발견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집권자의 개인적 성향으로 분석된다. 파벌정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현재 최악의 한·일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결국 극우라는 그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다. 파벌 세력의 크기에 따라 배분되던 일본의 내각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이후 능력 위주로 구성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내각 구성원이 총리의 통치에 미치는 견제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이 또한 한·일관계를 변화시키는 변수는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2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베 정권에서 파벌이 약화되면서 그나마 비둘기파 내각 인사들이 조금이나마 견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민당을 주축으로 하는 일본 보수세력과 그 파벌들은 메이지유신 이래의 제국주의 국가 건설을 영광스러운 과거로 기억하면서 명예회복을 노려왔기 때문에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하는 진보세력과는 늘 대립해왔다. 지난 1995년 태평양전쟁 당시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村山) 담화는 사회당 당수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가 자민당과의 연합에 성공해 연립정부의 수장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자민당 체제하에서 현재까지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은 약화의 길을 걸어왔다.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다고 사과한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도 민주당 정권의 수장이었다. 당시 민주당 내에서도 자민당 출신의 보수파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를 포함한 다양한 이념의 파벌이 있었고 반발도 적지 않았다. 오자와는 자민당 간사장이던 1993년 ‘일본개조계획(日本改造計劃)’이라는 책에서 ‘보통국가(普通の國)’론을 최초로 언급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의 정치적 신념인 ‘보통국가론’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집권당 성향보다 집권자의 성향이 한·일관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 담화’도 자민당 정권에서 발표됐지만,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의 성향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그는 보수 일색인 자민당 안에서 진보적 색채가 짙어 ‘괴짜’로 통했다.

파벌의 세력에 따라 할당되는 내각 등 주요 포스트의 변화도 총리의 전횡에 어느 정도 견제 역할을 하지만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고이즈미 총리 이전에 일본 내각은 파벌 세력에 따라 할당됐다. 정치인 개인의 능력보다 파벌의 역학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내각 기능 저하’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파벌의 추천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내각 인사를 단행했고, 내각은 5년간 장수했다. 이후 내각과 파벌의 구심력은 떨어졌지만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자민당 내 무파벌 의원들이 12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포스트 아베’를 노리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에게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자민당 내에서는 이시바 간사장의 지지층이 아베 총리보다 더 많다”면서 “역사수정주의를 주장하는 아베 총리보다 이시바 간사장은 합리적 보수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베 정권의 연임 여부는 아베노믹스의 성공 여부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