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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전후해 일본의 파벌이 약해진 배경에는 선거제 및 정치풍토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소선거구제로의 변화가 의도치 않은 파벌 해체를 촉발했고, 핵심 연결고리였던 돈과 자리로 계파를 관리했던 파벌의 수장이 돈을 못 쓰게 된 현실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파벌 정치 약화를 가져온 결정적 계기는 1994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의 선거제도 변화와 정당조성법이 핵심이다. 선거제도의 변화는 파벌이 생긴 이유가 선거 때문이라는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라는 지적이다. 한 지역구에서 2∼6명을 뽑는 중선거구제에서는 이른바 돈과 조직을 가진 보스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1선거구에서 1명의 당선자를 뽑는 소선거구제하에서 보스의 힘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당 총재나 간사장 등 중앙당의 영향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계파보스의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인 ‘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끊이지 않았던 권력형 비리는 ‘정치 3류국’이라는 불명예를 가져다 주었고 후속 조치로 나온 정당조성법은 중앙당 집행부가 파벌보다 더 많은 자금을 국가에서 얻어 자금 배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파벌 정치의 약화를 가져왔다.

중선거구제가 시행될 때 항상 과반수를 목표로 하는 자민당에서는 같은 선거구에서 같은 당 소속의 후보를 복수 추천하거나 선거구에 따라서 당선인원과 같은 인원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같은 당원이라도 경쟁자가 생기고 격렬한 선거전에 돌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당수를 목표로 하는 당내 실력자는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계열화하고 그 계열에 들어간 후보자에게는 돈을 지원했다. 후보자는 당선되면 그 파벌의 소속 의원으로서 파벌 총수의 정권 실현을 위해서 노력했다. 당내 실력자와 계열 소속의 의원 사이에 공생관계가 형성됐던 것이다.

하지만 단 1명의 당선자를 뽑는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유권자들에게 경쟁력 있는 후보가 필요했다. 이에 자연스럽게 계파 출신의 인사보다 인기 있는 후보자가 필요했고 중앙당의 영향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전략공천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파벌과 보스의 영향력은 선거제도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됐다.

파벌로 가는 ‘돈줄’을 막자는 취지의 정치자금법 개정도 파벌 약화에 일조했다. 지난 1993년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정계는 자민당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록히드 사건(1976년), 리쿠르트 사건(1988년), 사가와큐빈 사건(1992년) 등 파벌 보스들이 연루된 잇따른 뇌물스캔들 앞에선 철옹성 같던 자민당도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1993년 총선에서 참패, 38년간의 1당 독주체제를 접어야 했다.

이어 집권한 호소가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연립정권은 ‘자민당 내 파벌 해체’를 숙원사업으로 설정했다. 정치자금법은 기업 등 단체가 개별 정치인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 주요 골자다. 5년의 경과기간을 거쳐 2000년부터 시행됐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