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다나카·나카소네派 등 5大 파벌… 총리·각료 좌지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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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극우 도발을 벌이는 데는 그의 독주를 견제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역사왜곡·군국주의 부활에 급가속 페달을 밟아도 제동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파벌 정치로 유명했던 일본이 2000년을 전후해 파벌 해체의 길을 걸은 이후 최근 이런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일 문화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일본 파벌 정치는 2000년대부터 약해지기 시작한 뒤 아베 정권 들어 더욱 약화되는 모습”이라며 “아베 파벌이 강해지면서 과거처럼 때로 저항하고 때로 협력하는 전형적 파벌 정치의 모습이 옅어졌다”고 진단했다.

전후 ‘1955년 체제’ 이후 일본 정치사를 꿰뚫는 최대 키워드가 ‘파벌’이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지점이다. 이 같은 파벌의 영향력은 지난 2001년 ‘파벌 타파’를 추진한 고이즈미 전 총리 이후 약화돼 왔다. 이후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거치면서 더욱 위축된 자민당 파벌 정치 시스템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제자 격인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른 뒤 그 추세가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극우 성향 아베 총리, 견제할 파벌 약화 =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아베를 지지하는 파벌의 영향력만 커지고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이른바 ‘대통령형 총리’가 되면서 정치권에 대한 통제력도 강해지고 권력 역시 커졌다”고 분석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 당시 관방장관을 맡았던 아베 총리 역시 같은 모리(森)파 출신으로 인기 추구, 파벌 약화, 총리로의 권력 집중, 장기집권 등 고이즈미 전 총리의 유산을 받아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파벌 정치의 약화는 우익적 총리에 대한 견제 세력이 약화됐다는 측면에서 한국과 같은 주변국들에게는 우려되는 대목이다. 과거 파벌들은 국내 정치적 요소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고이즈미·아베 총리는 상대적으로 강력해진 총리의 권한을 바탕으로 전후체제의 타파와 이른바 ‘정상국가론’을 들고 나오며 우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7대 파벌 중 아베 총리를 배출한 마치무라(町村)파가 가장 세력이 강하며 아베 총리에 반기를 드는 파는 누카가(額賀)파와 기시다(岸田)파 두 개뿐이다.

◆ 파벌 정치의 몰락 = 파벌 간 분열, 선거구제 및 선거자금 제도의 변화, 강력한 중앙집권적 총리의 등장이 파벌 정치의 몰락 원인으로 꼽힌다. 파벌 정치 균열의 시작은 다케시타(竹下)파의 분열에서 시작됐다. 정치 부패를 둘러싼 수구파와 개혁파 등의 논쟁이 벌어지며 호소가와 모리히로(細川護熙)의 일본 신당 창당, 오자와(小澤)파 탈당 등의 연이은 탈당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모두 최대 파벌이었던 다케시타파 소속이었다.

이렇게 균열이 가고 있던 파벌 정치는 소선거구제의 정착과 정치자금법의 개정으로 인해 차츰 약화됐으며 고이즈미 정권의 등장은 여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고이즈미 당시 총리는 오랫동안 자민당을 지배해 온 다케시타파의 지배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소속 파인 모리파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총리로 권력을 집권시켜 파벌의 전반적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와 함께 자민당 내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파벌 결속력이 떨어졌고 과거와 같이 파벌 간 경쟁에 의한 ‘유사 정권 교체’는 어려워졌다. 이후 민주당 정권을 거치며 야당으로 몰락한 자민당 내 파벌은 더욱 약화됐다. 진 센터장은 “선거구제의 변화는 당에서 전략 공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파벌의 우두머리가 아닌 중앙당의 권력이 세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1955년 체제’를 관통하는 ‘파벌의 정치사 = 자민당 탄생 뒤 60년을 이어온 자민당의 ‘1955년 체제’를 움직이는 키워드는 파벌 정치 시스템이었다. ‘1955년 체제’ 초기 자민당 내부는 정치 이념적 관점에서 급진 보수와 온건 보수 등 세 갈래로 분류됐다. 1960년대는 이른바 ‘안보투쟁’과 정치인들의 세대 교체가 이뤄지며 온건보수로 분류되는 다나카(田中)파와 오히라(大平)파, 우파적인 후쿠다(福田)파와 나카소네(中曾根)파, 소일본주의와 아시아주의를 계승하는 미키(三木)파 등 5대 파벌이 정착됐다.

1970년대는 다나카파와 오히라파의 연합에 대항해 후쿠다파가 도전하는 양상을 띠었다. 같은 정당이었지만 외교·안보 및 경제·사회 등의 중심 노선과 정책에서 차별점이 있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들 파벌에서 번갈아가며 총리를 배출하는 것으로 ‘유사 정권 교체’의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10여 년 동안은 5대 파벌 중에서도 다나카, 다케시타파로 이어지는 최대 파벌의 지배기를 구가했다.

박세영 기자 g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