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에 이미 대법원의 통상임금 관련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 통상임금을 둘러싼 각 사업장의 소송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부도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해 노사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2기 경제팀의 경제활성화 정책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21일 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임단협에서 통상임금 문제가 핫이슈로 떠오른 가장 큰 배경으로 대법원 판결의 애매모호한 기준을 꼽는 목소리가 많다.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근로자 및 퇴직자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및 퇴직금 청구 소송 2건에 대한 선고에서 그간 논란이 됐던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해당 판결로 인해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 산정 범위에 포함되면서 근로자들은 임금 채권의 소멸시효인 최근 3년간의 통상임금 증가에 따른 각종 수당 인상분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판결 내용 중 노사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합의하거나, 소급청구로 인해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되는 경우에는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단서는 새로운 논란거리가 됐다. 대법원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200여 건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통상임금에 관해서는 법원 판결을 지켜본 후 논의하자’는 노사 간 기존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올해 임단협 협상 테이블에 통상임금 안건이 올라와 있기도 하다.

정부의 통상임금 관련 가이드라인 부재가 이 같은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 후 지난 1월 통상임금 노사지도지침(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혀 관련 입법이 무산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노사정소위원회에서도 통상임금 입법과 관련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 경제팀이 내건 경제활성화 전제 조건인 ‘사회적 대타협 이행’이 통상임금 등을 둘러싼 노사 분규에 발목이 잡혀 경제활성화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통상임금 논란이 가장 극심한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중요하지만 노사정이 우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며 “이후 보다 단순한 임금체계를 정립해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해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