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콜리플라워와 마늘종, 연근, 오이(왼쪽부터) 등 ‘식초물’을 기미해 만들어진 각종 피클. 새콤달콤한 맛이 무더위에 지친 여름철 입맛을 돋우는 데도 한몫한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피클 만들기처럼 쉬운 조리법도 드물다. 그래서 어떤 이는 피클 만들기가 라면 끓이기보다 더 쉽다고 한다. 다듬은 채소에 식초와 설탕을 적당량 섞은 물을 끓여 부으면 새콤달콤한 맛의 피클이 완성된다. 이처럼 만들기 쉽기 때문인지 피클의 역사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피클은 BC 2000년경 티그리스강 유역으로 이주해온 인도 원주민들이 처음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고대사회에서도 피클은 식품 자체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어쩐 일인지 건강식의 하나로 여겨졌다. 아마도 이는 피클 물의 주재료인 식초와 연관이 깊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클레오파트라가 피부미용을 위해 채소를 식초에 절여 먹었다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얘기도 전해오고 있다.

확실히 식초는 몸에 좋은 음식으로 현대에 들어와서 여러 연구를 통해 인정받고 있다. 식초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학자만 20세기에 들어와 모두 3명이 탄생했다.

특히 식중독 등 장의 면역력이 떨어지며 발생하는 질환 예방에 식초만큼 좋은 식품도 많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이 음식에 식초가 2%만 들어 있어도 살모넬라균, 비브리오균 등 식중독을 유발하는 세균들이 살아남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식초에는 주성분인 초산 외에 구연산 등 5∼6종의 유기산과 다량의 유리아미노산이 들어 있다. 식초에 들어 있는 유기산은 체내에 섭취되면 항산화제 역할을 해서 몸에 나쁜 활성산소를 몰아내고 신진대사가 원활해지도록 돕는다.

피클의 경우 다량의 당이 식초에 가미되기 때문에 장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견해도 일부 있지만 피클 주재료인 채소의 각종 영양성분들이 인체에 유익한 작용을 하며, 또 당의 양은 기호에 따라 적당히 조절하면 된다.

가령 콜리플라워로 피클을 만들 경우 유해물질 해독과 배출이 잘 이뤄져 결과적으로 장의 면역력이 향상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콜리플라워의 설포라판과 인돌 성분이 그 같은 해독 기능을 지녔다. 마늘종 피클은 마늘종에 풍부한 알린 성분으로 인해 피가 혈관 내벽에서 엉기는 현상을 예방할 수 있다. 알린은 체내에 흡수되면 알리신으로 변해 그 같은 항혈전 작용을 한다. 또 연근으로 피클을 만들면 연근의 끈적끈적한 당단백질 성분인 뮤신이 소화기의 각종 염증을 예방해주는 항염 효능을 보여준다.

피클의 대명사로 통하는 오이피클은 또 어떤가. 얼마전 한 김밥전문점에서 식중독 예방을 위해 소 재료로 시금치 대신 오이피클을 넣는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이 또한 식초의 천연 방부효과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대처법으로 보여진다.

인체에 대한 오이의 효능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오이는 칼로리가 낮고 지방함량이 적어 다이어트에 적합한 식품이다. 또 알칼리성 식품으로 피의 산성화를 막아주고 피를 깨끗하게 해준다. 또 사과처럼 오이에도 풍부한 펙틴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줄이고 동맥경화도 예방해준다. 펙틴은 간이 콜레스테롤을 재료로 해 만든 담즙산을 흡착해 배설시켜 콜레스테롤 소모를 촉진한다. 대사증후군 환자들의 식단에 오이가 항상 이름을 올리는 것도 그 같은 효능 때문이다.

한편 피클을 만들 때 가미되는 향신료의 효능도 눈여겨볼 만하다. 향신료는 대부분 살균과 방부 효과가 있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해준다. 열대 지방일수록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음식 보존을 위해서라는 얘기가 전해온다. 피클에도 이 같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다. 오이피클의 경우 주로 올스파이스가 많이 가미되는데 기분을 진정시켜주는 것은 물론 강력한 살균효능도 지녔다고 한다. 피클에 통째로 띄워넣는 월계수잎 역시 음식을 오래 보존하도록 도와준다.

향신료는 살균 외에도 여러 효능을 지녔다. 대표적인 것이 소화기능의 향상이다. 향신료에 함유된 알칼로이드 성분이 타액이나 소화액 분비를 촉진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때 향신료의 하나인 마늘을 함께 먹는 것도 소화가 잘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