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6월 27일 강원 양양군 실내체육관에서 농협중앙회가 서울 강북·목동 힘찬병원과 함께 ‘농업인 행복버스’ 의료봉사 활동을 펼친 가운데 어르신들이 의료진으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평생 농사를 짓고 살면서 아파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는데 서울의 전문병원 의사 선생님들이 멀리 떨어진 시골까지 와서 친절하고 자세하게 상담·진료해 주니 병이 다 나은 것처럼 기분 최고입니다.”

지난 6월 27일 오후 강원 양양군 양양읍 서문리 실내체육관. 농협중앙회 양양군지부와 서울 강북·목동 힘찬병원 진료팀이 ‘농업인 행복버스’를 통해 무료 의료봉사 활동에 나서자 양양 지역 농업인들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양양농협이 실내체육관에 설치한 탁자 17개와 의자 300여 개, 물리치료 침대 10개 등에서 의사와 간호사·의료기사 등 24명의 진료팀은 이날 오전부터 엑스레이 검진 차량과 저주파 통증치료기, 적외선·공기압 치료기 등을 갖추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인 환자들을 상담·진료·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영남(여·73·양양군 손양면) 씨는 “지난해 3월부터 허리 디스크를 앓아 통증이 심한 날에는 걷지도 못했으나 논밭 농사를 짓느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면서 “유명한 의사 선생님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진료를 받고 물리치료까지 받으니 날아갈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5년 전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왼쪽다리 관절의 통증이 점점 심해진다는 이기세(73·양양읍 구교리) 씨는 “오랜 시간 동안 서 있거나 걸으면 다리와 엉덩이·허리 등이 쑤셔서 너무 힘들었으나 농촌지역으로 마땅하게 치료할 만한 병원이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병이 더욱 심해졌다”면서 “엑스레이로는 연골관이 잘 안 보여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수술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경외과 전문의로 의료봉사 활동을 주도한 백경일(41) 강북 힘찬병원장은 “우리 신체 중 사용량이 많은 관절은 움직임이 잦은 만큼 통증에도 노출되기 쉽다”며 “통증이나 이상이 느껴질 때는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하나 농촌 어르신들은 지리적 특성과 시간적·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치료를 미뤄 질환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백 원장은 “강원도에는 관절 전문병원이 많지 않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행복버스 행사를 통해 진료를 한 뒤 약물·물리치료를 하며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며 “이 같은 자리를 자주 마련해야겠다”고 강조했다. 강북·목동 힘찬병원 의료팀은 이날 모두 350여 명에 달하는 양양 지역 농업인들을 진료했다.

앞서 오전에는 김진웅(33·대한법률구조공단 강릉출장소장) 변호사가 ‘무료법률상담’을 벌여 10여 명의 노인들이 농촌재산권 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법률 자문을 받았다. 김 변호사는 “농업인 행복버스에 처음 참가해 법률에 대해 잘 모르는 농촌지역 노인들에게 상담을 하는 시간이 보람 있었다”며 “분쟁이 잘 해결돼 농민들의 고민이 사라지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실내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장수사진(영정사진)’ 코너도 인기를 끌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애란(45) 씨가 할머니·할아버지들의 얼굴에 가볍게 화장도 해주고 립스틱도 칠해주며 머리까지 손질한 뒤 한복·양복으로 새단장시키자 노인들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 카메라 앞에 앉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뻣뻣했던 노인들은 카메라팀의 주문에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장수사진 촬영에 즐거워했다. 박금례(여·64·조산리 서원길) 씨는 “허리가 좋지 않아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장수사진까지 찍어줘 기분이 아주 좋다”며 즐거워했다. 이날 장수사진 촬영에는 모두 156명의 노인들이 참여했다. NH개발 장수사진팀 이종민(44) 씨는 “노인들의 사진을 찍은 뒤 포토샵을 통해 점도 빼고 눈은 더 선명하고 크게 하는 등 10년 정도 젊게 제작한다”며 “장수사진을 찍은 본인은 물론 자녀들도 매우 좋아하는 등 호응도가 높아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고 흐뭇해했다.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는 이에 머물지 않고 전통타악연구소 예술단 14명의 문화예술공연이 1시간 동안 펼쳐졌다. 이들은 난타와 판굿, 한국무용, 민요·판소리 등 소리, 국악연주 등을 선보였다. 이에 노인들은 평소 접하지 못했던 공연의 향취에 흠뻑 빠져들어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등 즐거운 축제의 시간을 보냈다. 방승환(55) 예술단장은 “농사를 짓느라 평생을 일하신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오늘 공연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공연이 끝난 뒤 할머니들이 땀을 닦아주며 ‘고맙다’고 말씀하실 때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보다 더욱 보람되고 가슴이 찡할 정도로 감격스럽다”고 강조했다.

양양=고광일 기자 ki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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