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에 여의도의 관심이 집중됐다. 안대희 전 국무총리 지명자에 이어 문창극 전 지명자까지 낙마하고 정홍원 총리가 유임된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에 따라 향후 당·청 관계와 여야 관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심 새누리당은 박 대통령이 국면을 확 바꿀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놓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박 대통령은 “국회는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 달라”며 신상털기식 인사검증의 문제점만 지적할 뿐 이번 인사 참사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하지 않았다. ‘제도 탓’만 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지자 새누리당 내에선 한숨이 터져나왔다. 한 초선 의원은 “인사청문요청서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박 대통령이 국회에 제도 탓만 하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공교롭게 같은 날 발표된 리얼미터의 박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평가 관련 주간집계에서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부정적 평가가 50%대를 기록했다. 이 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0.6%포인트 하락한 43.4%를 기록했고 부정 평가는 0.7%포인트 상승한 50.0%로 나타났다.

여권에서는 ‘인사 참사’가 계속 박근혜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에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때 ‘수첩인사’로 곤혹을 치렀던 박 대통령은 최근에는 인사 관련 공식 라인이 아닌 비선(秘線) 라인을 통해 인사를 논의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이재만 총무비서관, 박 대통령의 숨겨진 측근으로만 알려진 정윤회 씨의 이름 뒷글자를 딴 ‘만만회’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여권 관계자는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제기한 ‘만만회’는 말도 안 된다”면서도 “공식 라인에서 누구도 추천하지 않은 인사가 깜짝 발표되는 상황이 이 같은 의혹을 낳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박 회장은 몸조심을 엄청 하고 있고 이 비서관은 ‘메신저’ 역할 이상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 씨의 경우에는 여권에서도 베일에 싸인 실세가 아니냐는 의혹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밝혔다. 애초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원로그룹 모임인 ‘7인회’가 인사 참사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복수의 여권 관계자들은 “7인회는 정확한 실체도 없고 그런 역할을 맡지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인사가 발표될 때마다 의원들도 이번 인사는 누가 추천한 것인지 분주하게 알아보고 다니는데 정확히 추천한 사람이 알려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최근 인사 참사를 지켜보며 조만간 ‘비선’ 관련 의혹 제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로 그리 되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서는 원로들도 우려를 표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박 대통령은 내가 믿는 사람, 아는 사람만 찾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공식 채널이 아닌 소규모 비선 라인을 통해 상당히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