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진도 침몰 사고 수사 과정에서 사고 여객선의 승무원들의 파렴치한 행태가 재확인되고 있다. 검찰과 검·경합동수사본부(본부장 안상돈 검사장)는 선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준석(69) 선장을 비롯한 생존한 선원 15명은 사고 직후 구조될 때까지 자신들의 몸을 피하는 것 외에 승객 구조를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이 선장은 운항 시간의 절반 이상을 조타실이 아닌 침실에서 잠을 자다 사고가 나자 제일 먼저 여객선에서 탈출했다. 선장의 뒤를 따라 무전기로 탈출 정보를 주고받으며 자신들만이 아는 통로를 이용해 일사불란하게 여객선을 빠져나간 선원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살피는 데 급급한 나머지 위험에 처한 승객들을 위해 어떠한 구조활동도 하지 않았다. 기관사들이 엔진을 꺼놓고 탈출하는 바람에 점점 기우는 배 안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은 죽음의 공포와 사투를 벌였다.

◆사고 날 때까지 잠만 잔 선장=합수부 수사 과정에서 선장 이 씨가 항해 시간 12시간 중 절반이 넘는 7시간을 침실에서 보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합수부에 따르면 이 씨는 여객선이 안개 속에서 출항한 지난 15일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두 시간 동안 5층 조타실에서 운항을 지휘했다. 그 뒤 이 씨는 조타실 뒤쪽 침실로 들어가 7시간 동안 잠을 잤다. 16일 오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잠에서 깨어난 이 씨는 선실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고 조타실을 드나들었다. 여객선이 전남 진도 해역에 들어선 오전 8시쯤에 조타기는 ‘자동’에 맞춰져 있었다.

이 씨는 경력 4개월의 3등 항해사에게 항로변경지역인 사고 해역을 지날 때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라고 지시한 뒤 다시 침실로 돌아갔다. 전체 항해 시간 12시간 중 7시간 침실에서 숙면 중이던 이 씨는 오전 8시 50분쯤 선박이 크게 흔들리자 조타실로 나왔다. 이 씨는 배가 기울어 잠을 깼으나 비몽사몽이었던 관계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승객을 위한 구호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채 배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사고 후 탈출하느라 급급한 선원들=합수부가 공개한 사고 직후 여객선을 찍은 세월호 선원들이 조타실을 빠져나오고 있는 장면을 보면 왼쪽으로 50∼60도 정도 기운 세월호 좌현에 밀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에는 먼저 탈출한 선원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23정은 이날 오전 8시 58분 상황실로부터 출동 명령을 받고 출동 당시 위치에서 30㎞ 떨어진 사고현장에 오전 9시 30분 도착했다. 선원 한 명이 여객선에서 경비정으로 건너뛰어 탈출했다. 해경 대원들이 밧줄로 또 다른 승객 구조를 시도하던 도중, 오른쪽 해경 대원이 간판에 묶인 구명벌을 바다에 던졌다.

그러나 선원들은 탈출로 옆에 여러 개의 구명벌이 놓여 있었지만 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탈출하는 길에 탈출방송을 할 수 없어 승객들에게 상황을 알리지 못했다고 말한 선원들은 자신들끼리는 무전기로 연락하면서 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원들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하는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승객들은 안내방송만 믿고 구명정을 입고 선실 내에서 대기했다.

이와 관련해 해양전문가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선실에 있다가 선실에 물이 차오르면 조끼의 부력 때문에 물속으로 들어가 탈출로를 찾는 게 어려워져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위 중 하나”라고 말했다.

◆꺼진 엔진 그대로 두고 배 기우는 것 방치한 기관사들=선원들이 탈출하는 사이 배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사고 당시 기관장 박모 씨 등 기관사 7명은 조타실과 난간 쪽에 몰려 있었는데, 이곳은 세월호 내부에서도 외부에서의 발견과 접근이 쉬워 상대적으로 구조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승객들에 비해 선박구조에 밝은 선원들이 대피 장소로 조타실과 난간을 선택한 것으로 합수부는 보고 있다. 선원들이 안전한 곳에 대피해 구조되는 사이 세월호는 점점 선체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특히 배가 기운 직후 엔진이 멈춘 여객선은 복원력이 떨어져 더욱 기울었다. 선장 이 씨 등 선원 대부분은 검·경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항로를 변경, 배가 20도가량 기운 이후 엔진이 멈췄다”고 진술했다. 또 이 씨가 “엔진을 정지시키고 선내방송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진술도 나왔다. 속도를 떨어트려 배가 균형을 잃었고 결국 침몰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해양학과 교수는 “엔진을 꺼버리면 배의 복원력을 되살릴 길이 없어진다”며 “배가 기울어진 상태서 엔진을 끄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목포=정유진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