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전문가들이 이른바 섣부른 ‘통일 환상론’이나 ‘남북교류 가속론’에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은 아직 남북관계에 신뢰가 쌓이지 않고 도발 위협이 지속되는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유화 제스처를 보인 이후 연초부터 쏟아져나오는 통일론이 갖는 함정이 크다는 인식에서다. 통일론의 당위성이나 남북관계를 통한 북한 변화 전략 추진을 부인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현재처럼 북한이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시기상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는커녕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기정실화하려고 하고 대남도발에 대해 진정성 있는 한마디의 사과도 없는 상황은 역대 남북관계 가운데 최악의 상황으로 평가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박근혜 대통령이 누누이 강조해왔던 남북 간 신뢰 쌓기를 위한 ‘벽돌 쌓기론’에 대해 북한은 미동도 않고 아예 묵살해왔다. 기본적으로 신뢰가 쌓여야 하고, 신뢰 증진을 위한 북의 조치들이 따라줬어야 여러 개선 조치들이 가능한데 시작부터 벽에 막혀 있는 상황에서 희망과 기대만을 갖고 통일론을 얘기하는 게 정부로서는 답답한 형국이다. 전문가들도 “통일을 목표로 한 외교안보 정책 수립이 아닌 바람직한 외교안보를 목표로 한 통일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기본입장은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 분위기’를 언급했지만 그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북한의 의도에 의구심이 든다고 한 배경에는 북한의 대화 공세를 통한 교류가 김정은의 통치자금 확보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용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신년사 중 ‘남북관계 개선’도 그 의미를 봐야 한다”면서 “얼핏 보기에는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통치자금에 쓰일 돈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북한이 마식령 스키장과 관련된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며 “과거 통치자금 통로였던 금강산 관광사업이 없어지면서, 군부 내 이권다툼이 생겼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태도변화 이전에 정부가 교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평가했다. 조영기(북한학)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혁명적 결정 없이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5·24 조치가 남북 경제교류에 걸림돌이 될 수는 있지만 4년간 북한의 태도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바로 해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방승배·정철순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