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가을비가 내린 지난 6일 삼불봉에서 바라본 계룡산 서남쪽 일대 산군. 남매탑에서 갑사로 내려갈 수 있는 야트막한 봉우리(왼쪽)에 등산객들이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계룡산의 단풍은 신선봉-갓바위-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이미 졌고 산 아래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공주 =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요즈음 ‘엄홍길 대장과 오르는 山’은 그와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엄홍길(53·밀레 기술고문) 대장의 안데스 산맥 원정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년여 동안 그와 함께 기획했던 산행 가운데 실패(?)했거나 문제(?)가 있었던 산을 복습하고 있다. 기상 악화로 정상 등정에 실패했거나 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지면에 반영이 되지 않는 산들이다. 또 엄 대장과 함께 여러 번 오른 산중 지면에 소개되지 못했던 ‘명산’들이다. 엄 대장이 안데스 원정을 앞두고 과제로 내준 산 가운데 하나가 계룡산(鷄龍山·845m)이다. 엄홍길 대장과 함께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세 차례나 올랐었지만 매번 토, 일요일의 행사에 참가했기에 문화일보 지면에는 소개되지 못했던 산이다.

기자가 계룡산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은 도사(道士)를 자처한 차력사의 입을 통해서다. 중학생 때 장터에서 마주한 차력사가 “계룡산에서 10년, 지리산에서 또 10년 입산수도했다”고 자신의 이력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도사님(?)들은 계룡산 입산수도를 도사 자격증처럼 챙기는 것을 보았다. 당시로써는 계룡산에 ‘도사 대학’이 있는 줄 알았을 정도다.

무속인들은 계룡산이 산신(山神)으로부터의 기(氣)를 받는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산세가 좋고 혈맥이 왕성하기 때문이다. 또 ‘비운의 터’에서 ‘기도 발’이 잘 받는다고도 한다. 계룡산 인근이 조선 개국 초 도읍지로 거론되다 퇴출된 수치와 분노의 땅이기에 무속인들은 기도 발이 잘 먹힌다고도 한다. 그래서 계룡산 골짜기마다 당집과 점집이 빼곡했다. 유사종교의 근원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종교정화운동으로 1984년 이후 대부분 정리되었다. 그러나 요즘도 갑사 인근 마을에는 점집과 당집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다음은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갑사로 가는 길 (이상보)’이라는 수필을 통해서다. 계룡산 오누이탑(남매탑)에 얽힌 전설의 공간적 배경이 계룡산과 갑사(甲寺)였다.

이 같은 이미지가 계룡산을 신비의 공간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된다. 특히 4060(40∼60대) 세대들에게는 수학여행의 추억이 있는 산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엄 대장도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고산 원정을 앞두고 훈련지로 택했던 설악산 다음으로 즐겨 찾는 산이 계룡산이었다”고 소개했다.

원래 계룡산 산행은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였으나 갑사 반대편인 동학사 진입로에 10리 벚꽃터널이 조성되면서 요즈음은 ‘춘동학(春東鶴) 추갑사’라는 얘기도 있다. 대전에서 진입이 빠르고 고속도로 접근이 쉬운 교통의 편의성 때문에 동학사 지구에 관광객이 몰렸기 때문이다. 계룡산국립공원사무소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200여만 명의 관광객이 계룡산 일대를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는데 동학사 지구가 70여만 명, 수통골지구가 70여만 명, 갑사지구가 40여만 명, 기타 20여만 명이었다. 상대적으로 갑사로 오르는 사람들이 줄었다.

‘계룡(鷄龍)’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계룡산은 천황봉(845m)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이어진 모습이 닭벼슬을 쓴 형상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의 끝 부분에 위치한 계룡산은 해발 845m의 주봉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관음봉·연천봉·삼불봉 등 2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동학사·갑사계곡 등 7개의 계곡으로 이뤄져 있다.

계룡산은 삼국시대부터 백제를 대표하는 명산으로 여겨져 왔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묘향, 지리, 태백, 팔공산과 함께 5악 중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3악(묘향, 계룡, 지리산) 중 중악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아왔다. 풍수 또한 뛰어나서 조선 태조가 도읍으로 삼기 위해 정상인 천황봉의 남쪽에 있는 신도안에 주춧돌까지 세웠을 정도다. 풍수가 좋고 정기가 맑아서 예언서 정감록이나 격암유록 등에 의하면 머지않아 이곳에 성인이 나타나 새 세상을 열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기도 한다. 계룡산은 1968년 12월 31일에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대전, 충남 계룡시, 공주시에 걸쳐 있다.

국립공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등산 코스는 크게 4개 지구로 나뉘어 진다. 동학사, 갑사, 신원사, 수통골지구다. 탐방 코스로는 난이도별로 8개 코스가 관리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장 힘들고 긴 코스는 동학사주차장에서 은선폭포-관음봉고개-연천봉-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로 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로 11.8㎞로 6∼7시간이 소요된다. 다음으로 수통골주차장에서 도덕봉-가리울삼거리-자타고개-금수봉삼거리-금수봉-빈계산-수통골의 9㎞(5시간 30분) 코스와 신원사탐방지원센터-신원사-고왕암-연천봉고개-연천봉-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에 이르는 9.9㎞(6시간) 코스도 조금은 힘겹다.

갑사에서 원효대-연천봉-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에 이르는 10.2㎞(6시간) 코스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코스에 속한다.

등산보다는 계룡산 일대 관광에 산행 포인트를 준다면 동학사-남매탑-삼불봉-관음봉-동학사로 돌아오는 코스와 갑사에서 출발해 금잔디고개-삼불봉까지의 2시간 30여 분의 코스도 좋다.

엄 대장이 내준 과제 수행을 위해 6일 다시 찾은 계룡산은 이미 단풍이 휩쓸고 내려간 모습이다. 더욱이 가을비가 내려 붉은빛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동학사 입구의 국립공원관리사무소의 모니터를 통해 본 관음봉은 안개에 모습을 감췄다. 또 사진 촬영이 걱정이었지만 강행했다. 계룡의 기(氣)를 믿고서. 일단은 추억의 코스를 밟기로 했다. 동학사에서 남매탑을 거쳐 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까지 오른 후 되돌아 삼불봉으로 와서 갑사 쪽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개발(?)해 봤다. 왠지 계룡산에 오면 갑사를 꼭 들러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이다.

계룡산 등산로는 돌길의 연속이다. 산과 자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이다. 딱딱한 돌계단에서 오른 충격은 하산 때 더 심하다. 무릎 관절을 걱정해야 한다.

삼불봉은 계룡산의 기와 혈이 모이는 풍수상의 주봉으로 알려져 있다. 삼불봉에 서서 ‘계룡산의 기’를 팍 팍.

삼불봉은 계룡산 산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자연성릉(自然城陵)의 출발점이다. 자연성릉은 삼불봉에서 관음봉까지 이르는 2㎞의 능선길. 이 능선은 수직절벽을 따라 위태롭게 나 있는 최고의 험로로 군데군데 ‘노약자 우회’ 표지판이 있을 정도. 중간중간 난간에 기대 숨을 돌리면 자연성곽의 거친 암릉을 감상할 수 있다. 거의 수직으로 뻗은 철계단으로 올라 관음봉에 오른다. 관음봉은 군사시설로 막혀버린 천황봉을 대신해 계룡산의 실제적인 주봉 역할을 하고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문필봉, 연천봉부터 천황봉, 쌀개능선과 동학사 쪽으로 뻗어 간 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보살을 닮은 관음봉, 산세가 후덕하고 자비로운 느낌이다. 비 안개 때문에 천황봉의 안테나 시설물이 눈에 가물 가물거리지만 관음봉 정상에 서서 숨을 고르니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다.

공주 = 박광재 기자 kj59@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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