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와 재계가 강제징용 대일청구권을 강력 부인하는 가운데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강제동원피해조사위)가 ‘개별 보상’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나섰지만 정작 주관 부처인 외교부는 “일본과의 외교 마찰” 운운하며 우물쭈물하고 있다.

차관 3명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강제동원피해조사위는 6일에 이어 7일에도 일본 측 주장을 적극 비판하며 ‘국가 차원의 배상 협상’이 아닌 ‘개별 배상’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역설했다.(문화일보 11월 6일자 1·3면 참조)

하지만 외교부는 “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보자”며 어영부영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 일본과의 관계가 더욱 경색될까 우려하는 정부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다 못해 저자세에 가깝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인환 강제동원피해조사위 위원장은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민 개개인의 인적 피해는 국가끼리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며 “개인의 기본권은 국가가 개인 몰래 함부로 협상할 수 없는 것이며 법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게이단렌(經團連) 등 일본경제 3단체와 일한경제협회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일련의 한국 법원 판결에 반발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박 위원장의 발언에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7일 “법원의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만큼 진행 중인 사법 절차를 좀 더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라며 “이 사법 절차가 한·일 양국 간 경제 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없기를 바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는 애매한 설명만 거듭했다.

이 같은 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그간 정부가 1965년 협정으로 강제징용 보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내부적 입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해 5월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이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라 나오자 정부가 여론을 의식하며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부는 일단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리면서 법원 결정에 상응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