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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열린 서울국제뮤직페어 개막식 축하공연에 나선 국내 퓨전국악그룹 잠비나이의 무대에 국내외 음악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특히 이 밴드에 눈길을 집중시킨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듀서와 제작자들이었다. 거문고, 해금, 전자기타 등이 어우러진 잠비나이의 ‘혼합 사운드’에 넋을 잃은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듣지 못하던 음악”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록밴드 라디오헤드 등을 제작한 사이먼 휠러는 “하이브리드(Hybrid·혼합) 장르가 음악의 미래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U2, 롤링스톤스 등을 배출한 세계적인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는 “잠비나이의 독창적인 사운드가 눈길을 끌었다”며 “무엇보다 트렌드를 좇아가지 않고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지금 세계 대중문화는 ‘하이브리드 열풍’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르들이 다양하게 섞이고, 전통(아날로그)과 현대적(디지털) 감각을 아우르는 하이브리드가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2013년 한국의 대중문화는 방송, 영화, 음악 등 영역에 관계없이 하이브리드 소스로 글로벌 경쟁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섞지 않으면 썩는다”= 하이브리드가 최근에 도래한 새로운 문화 흐름은 아니지만, 지금의 혼합은 장르 파괴를 통한 새로운 질서 구축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방송계에서는 이제 섞지 않으면 도태되는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전에는 장르 간 교합이 맛보기 정도에서 끝났다면, 지금은 대놓고 극과 극의 반응을 ‘실험’하고 있다. ‘군디컬(군대+메디컬)’ ‘판디컬(판타지+메디컬)’ ‘시트콩(시트콤+콩트)’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 ‘다큐예능’ 등은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에서 세 개 이상의 장르를 섞는 건 일종의 ‘법칙’이 됐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경우 법정 드라마라는 주제에 초능력 소년이라는 판타지 요소와 로맨스를 더했다.

장르 교합이 이전보다 더 과감해지고 도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윤석진(국문학) 충남대 교수는 “아날로그 시대의 독창성에 대한 강박이 없어진 데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희미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측면이 크다”고 진단했다.

영화계도 예외는 아니다.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사진)가 가상과 현실이라는 공상과학(SF), 원주민 여성과 침입자 남성의 로맨스, 지구인과 나비족이 벌이는 전쟁 액션 등을 뒤섞어 하이브리드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이후, 장르적 교배는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내 영화의 하이브리드 바람은 2005년 개봉한 한·중 합작영화 ‘칠검’에서 불기 시작했다. 한국 제작에 중국 감독, 한·중 배우가 참여한 방식은 장르의 혼합뿐 아니라, 자본과 인적인 섞임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결과였다. 최근 할리우드에 진출한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기획에서부터 배급까지 모두 섞인 혼합의 결정체였다.

미국 제작사들은 한국 감독의 독창성에 주목하고, 한국 감독은 미국의 유명 배우와 자본을 이용하는 ‘윈윈 전략’의 시너지 효과가 충분히 발휘된 기회이기도 했던 셈이다.

하이브리드의 선두 분야는 역시 대중음악계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차가운 디지털 소스인 일렉트로닉 장르에 인간미 넘치는 아날로그적 희화성이 덧붙여진 혼합의 미학으로 세계적 트렌드를 이끈 이후, 크레용팝·잠비나이 등 후발 주자들도 섞임의 재료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다국적 콘텐츠의 조합으로 가장 공격적인 승부수를 띄우는 주인공은 SM엔터테인먼트(SM)다. 소녀시대, 슈퍼주니어, 엑소 등을 둔 SM은 ‘메이드 인(Made in)’이 아닌 ‘메이드 바이(Made by)’ 원칙에 입각, 모든 콘텐츠를 다분화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 작곡가와 교류를 시작한 SM이 현재 인연을 맺고 있는 전 세계 작곡가는 무려 450명에 이른다. 모든 기획과 제조는 ‘한국에 의해’ 이뤄지지만, 내용물은 ‘다국적 소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슈퍼주니어-M과 에프엑스, 최근 한국과 중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엑소의 멤버에 중국인이 포함된 것은 혼합 콘텐츠가 주는 시장의 영향력 확대를 계산한 전략이다.

◆ 감동보다 재미… ‘근본 없는 가벼움 경계’= 1990년대 불기 시작한 하이브리드 바람이 2000년대 새로운 흐름을 타면서 놓치지 않는 화두는 ‘재미’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고전적이고 정형화된 틀의 콘텐츠는 재미도 자극도 없다”며 “2000년대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재미를 강화시키는’ 콘텐츠에 대중이 몰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이브리드가 재미를 위한 ‘잡종 문화’라는 인식이 강한 것도 정보의 홍수화 바람을 일으킨 디지털 시대가 낳은 유행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이택광(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 경희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하이브리드는 하위(B급) 문화 정서에 기대고 있다”며 “각 장르에서 흥행 요소가 되는 것만을 뽑아서 상호 참조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재미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브리드 문화의 가장 중요한 생명력은 ‘섞임을 통한 새로운 창출’에 있다. 고정관념을 깬 혼합이 오로지 자극성을 위한 재미나 근본 없이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때, ‘섞임의 비빔밥’은 속 빈 강정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는 “방법론이나 표현의 고민 없이 상업적인 이익을 좇는 하이브리드 문화는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소비적인 트렌드만 양산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