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충남 아산시 탕정면 ‘아산디스플레이시티’에서 삼성디스플레이 오후 교대조 직원들이 힘찬 발걸음으로 출근하고 있다. 아산 =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아산 포도밭에서 정보기술(IT) 허브로.’

31일 서울의 삼성 서초사옥에서 76㎞ 떨어진 충남 아산시 탕정면의 ‘아산디스플레이시티’까지 약 2시간 동안 차로 이동하면서 읽어본 삼성디스플레이의 소개책자 맨 앞에 나오는 문구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포전공장(葡田工場)’이 된 셈이다. 탕정 일대에 포도밭이 많았다고 한다.

TV와 휴대전화, 태블릿PC 등에 들어가는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아산·탕정에 제조의 본산을 차리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199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경기 기흥 사업장에서 소형 LCD 패널 1, 2라인을 운영하던 삼성은 전자사업 발달단계에 따라 대형 디스플레이의 수요가 커지자 1996년 말 삼성SDI의 천안공장 부지 한쪽에 LCD·OLED 라인 5개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1998년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 3세대(600×720㎜) LCD 패널이 드디어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고, 그후 맨 앞자리를 놓치지 않고 선제투자를 지속해 왔다.

TV 크기가 커지고 여기에 필요한 대형 패널의 수요도 폭발할 것으로 예상한 삼성은 대규모 부지를 다시 물색하게 된다. 안재근(56)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아산복합단지장(전무)은 “당시 경기도와 충청남도 사이에 치열한 유치 경쟁이 벌어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경기도는 수도권개발제한이란 생래적 약점이 있었고, 결국 정부의 지방균형발전·서해안시대 정책에 호응하고 수도권 2시간대 교통의 이점까지 고려해 이곳으로 최종 낙착됐다.

‘아산디스플레이시티’로 불리는 총 456만㎡(138만 평) 규모의 아산·탕정 사업장은 1단지와 개발 중인 2단지로 나뉘어 있다. 245만㎡(74만 평)로 조금 더 큰 1단지에는 현재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2개 라인(7, 8세대)과 OLED 1개 라인(5.5세대)이 돌아가고 있다. 한쪽에선 LCD 및 OLED 패널과 짝을 이루는 삼성코닝정밀소재의 유리기판 4개 라인도 힘차게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2단지엔 공장은 아직 예정부지(66만㎡·20만 평)밖에 없고, 사원임대아파트와 자율형사립고(충남삼성고·2014년 3월 개교) 등 직원 생활편의시설만 들어서 있다. 산업·주거·교육을 한곳에서 해결하는 복합단지를 만들기 위함이다.

지금은 추석 등 명절에 고향으로 떠나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직원 버스에 주민들이 떡과 음료까지 전달하며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할 정도로 정서적 유대가 깊어졌지만, 초기 정착이 쉽진 않았다.

탕정 사람들은 ‘삼성이 오면 우린 쫓겨난다’ ‘공해가 심해진다’ 등 지레 겁을 먹고 건설 중인 건물 담벼락에 ‘이건희 물러가라’고 붉은 페인트 문구를 새길 만큼 심한 편견을 가졌었다. 그러나 한해 한해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 수입과 일자리 등 지역경제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사회공헌과 봉사 등 지역사회에 기여하려는 진정성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산과 삼성은 하나가 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지난 10월 25일 중국 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에서 ‘삼성쑤저우LCD’ 준공식을 했다. 하지만 주생산거점은 어디까지나 아산·탕정 사업장이다. 또 지방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울지 걱정하는 학부모 임직원을 위해 교육부를 설득해 현지에 높은 수준의 교육시설을 새로 개설하는 것도 과제이다. 물과 전기를 덜 쓰는 친환경 생산시설로 업그레이드해 주민들을 더욱 안심시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전무는 “비가 오면 진흙탕에 구두를 빠뜨리던 포도밭이 세계 최고의 전자부품 생산도시로 탈바꿈한 현실이 나 자신도 가끔 잘 믿어지지 않는다”고 밝게 웃었다.

아산 =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