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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탐정들/정명섭·최혁곤 지음 /황금가지

셜록 홈스, 아르센 뤼팽, 에르퀼 푸아로, 모스 경감…. 낯익은 이름이다. 오랜 세월 사랑받고 있는 추리소설 속 주인공들이다. 영광스럽게 도둑의 신분으로 주연이 된 뤼팽을 제외하면 모두 명탐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들에 필적할 만한 추리가가 있었다면 믿을까. 그것도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말이다.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의기투합한 두 명의 작가가 ‘조선의 명탐정들’이라는 팩션(Faction·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새로운 장르)을 선보인다. 총 16명의 ‘조선 명탐정’을 소개한다. 세종·연산군·정조·정약용 등 특정 공과(功過)의 이미지 속에 갇혀 있던 선인들이 잠시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다.

책은 세종대왕을 ‘옥스퍼드 운하(콜린 덱스터)’에서 병원에 입원한 채 지난 세기 사건을 밝혀내는 모스 경감에 비유한다. 한마디로 ‘앉아서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이라는 것. 이는 세종이 1429년(세종 11년) 3월, 왜(倭)통사(通詞) 이춘발 살해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세심하고 치밀한 성격의 세종은 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범인을 밝혀낸다. 대신들이 특정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처형을 제안하지만,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침착하게 신고자를 기다려 결국 진범을 잡아낸다.

조선의 열 번째 임금이었던 연산군은 20세기 초 모리스 르블랑이 만들어낸 괴도(怪盜) 뤼팽과 비슷하다. 영특한 인물이긴 했으나, 사악한 쪽으로 그 재능을 발휘했다는 것. 물론 뤼팽은 부자들로부터 돈과 재물을 탈취하고 무능한 경찰을 조롱했으니, 희대의 폭군과 비교되는 게 억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둑질은 도둑질일 뿐. 지은이는 연산군과 뤼팽을 ‘타인의 범죄를 꿰뚫어 본 악당형’으로 분류했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명탐정 홈스에 비견되는 건 정약용이다. 그는 정조의 명으로 미해결 사건 91건을 조사했는데, 현장 증거를 철저히 조사해 범인을 밝히는 과정이 홈스와 비슷하다. 지은이는 정약용을 16인 중에서도 ‘최고’라고 칭송한다. 그는 천재적인 두뇌에 꼼꼼한 성격까지 갖춰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특히 범죄 관련 문서를 매우 면밀하게 살핀 것으로 알려졌는데, 하루는 검시 보고서를 반나절 들여다본 후 경주 소금 장수의 사인을 밝혀냈다. 이에 놀란 서리가 비결을 묻자 그는 대답한다. “똑바로 보면 된다네. 제대로만 봐도 대부분의 사건은 해결되는 법이야. 형옥에 관한 일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중대한 일인데 목민관들이 관심이 없거나 귀찮아서 외면할 뿐이지.(후략)”

정약용과 콤비를 이루는 정조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명수사관이었다. 그는 범인을 밝혀낸 후에도 늘 정약용에게 의문점이 남아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16인의 탐정을 소개하면서, 책은 사건의 도입부를 소설처럼 재구성해 읽는 재미를 더했다. 또한 당시 시대상과 역사적 배경을 상세히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신주무원록’ ‘흠흠신서’ 등 참고문헌을 토대로 추리 방식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사극 속처럼 용의자를 붙잡아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는 재판이 연상되는데, 명탐정들이 여러 차례 검시와 법의학서를 통해 과학적으로 추리하는 모습이 놀랍고 신선하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