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4일 경기 화성시 반월동의 한 세차장에서 ‘세차광’ 김재형(42) 씨가 고압수를 이용해 세차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폴리셔(차량용 전동 광택기)로 차량 외장을 정비하고 있는 모습. 화성=임정현 기자 theos@munhwa.com

“내 차를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자연스레 남의 차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다른 차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게 내 차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인 까닭이죠.”

지난 14일 경기 화성시 반월동의 한 세차장에서 만난 ‘세차 마니아’ 김재형(42) 씨는 주말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세차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날 김 씨가 준비해온 수십여 가지의 세차 도구도 놀라웠지만 더욱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주차 장면이었다. 주변에 차량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최대한 반듯하게 주차를 하려고 애썼다.

‘타인의 차량에 절대 피해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세차 마니아 김 씨가 자신의 차를 사랑하는 방법이자 그의 오래된 철학이었다.

이날 김 씨가 세차장에 가져온 차는 2007년식으로 소위 ‘구형’에 속하는 오래된 차였지만 겉모습만 두고 보면 몇 달 전 출고한 차량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광이 났다. 트렁크 안은 작은 솔부터 각종 왁스, 세정제, 타월까지 수십여 가지의 세차용품들로 가득했다. 김 씨가 이날 세차장에서 빌린 것이라곤 세척시 사용한 ‘고압수’가 전부였다.

그는 6년째 거의 매주 집 부근 세차장을 찾아 차를 닦았다. 하도 자주 차에 광을 내다보니 이 동네 웬만한 세차장 주인이나 광택업자들은 김 씨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유리창 틈새에 낀 작은 먼지조차 용납하지 않는 김 씨가 한 번 세차를 시작하면 왁스칠을 하지 않아도 보통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가기 일쑤였다. 한 번은 오전 9시에 세차를 시작해 끼니를 모두 거른 채 그 다음 날 아침까지 세차를 한적도 있었다.

그는 “세차를 노동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순간을 즐기면서 차를 닦다 보니 힘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일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가 ‘디테일링(Detailing)’이라고 불리는 소위 ‘차량 내·외장 정비’에 푹 빠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였다. 일찍 아내와 사별하고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그가 인터넷 동호회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그게 인연이 돼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그때 디테일링에 빠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술에 찌들어 살고 있는 것”이라면서 “디테일링이 나에게 두 번째 인생을 선물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때 만들어진 인터넷 동호회 ‘퍼펙트 샤인’은 현재 7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정보를 나누고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대형 동호회로 성장했다.

7년 전만 해도 한국은 디테일링의 불모지였다. 당시 김 씨를 비롯한 디테일링 마니아들은 5달러짜리 평범한 왁스를 구하기 위해 20배 이상의 값을 치르기도 했다.

김 씨는 “초창기에는 거의 해외에서 물품을 구입했다”면서 “남들은 해외출장을 가면 면세점에 들르느라 정신이 없는데 나는 세차용품점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왁스 하나를 주문하고 20여 일을 어린아이처럼 기다렸다”면서 “신상 명품백을 기다리는 여성들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차를 아끼다 보니 김 씨는 지난 6년간 단 한 번도 잔고장 때문에 카센터를 찾은 기억이 없다. 김 씨의 차는 항상 ‘새것’의 상태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차를 ‘애지중지’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차를 열심히 관리하는 이유는 잘 타기 위함”이라면서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 되면 그건 차를 모시고 사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세차 마니아들이 차를 너무 아낀 나머지 차에 타는 가족들에게까지 과도한 청결을 요구하는 것을 봤는데 그건 차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집착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틈틈이 회사 동료들의 차에 광을 내주고 있다. 김 씨는 “꼭 내 차가 아니더라도 차가 깨끗해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면서 “한 번 관리를 해주면 동료들도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차를 아끼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20년 타기가 목표라는 김 씨는 “세차용품의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차에 얼마나 관심을 갖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자신의 차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이 주변 사람들의 차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번질 때까지 건전한 세차 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 =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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