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부터 적용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안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제한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법안에 대해 재적의원의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름 그대로 타협과 양보의 선진 정치문화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소수당의 권한을 지나치게 넓혀줌으로써 ‘식물국회’가 초래될 수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이 법에 따르면 다수결 원칙이 무시되고, 사실상 모든 안건은 의원 60% 이상이 찬성해야 처리가 가능하다. 법안은 우선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로 한정했다. 그간 여당은 여야 갈등으로 법안 통과가 어려울 때 직권상정을 통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곤 했는데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현행 상임위 제도하에서는 안건 처리가 불가능하다. 야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거나 여야 동수인 상임위에서 안건 처리가 불가능하고, 설사 여당이 많은 상임위에서 안건이 처리돼도 여야 동수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린다.

대신 쟁점법안 처리를 위한 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를 도입했는데 이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기 위한 요건이 까다롭다. 전체 재적의원 또는 상임위 재적위원 과반수가 요구하면 상임위원장이나 국회의장이 무기명 투표에 부쳐 재적의원이나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했을 때 지정하는 식이다. 23일 현재 재적의원수가 298명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한 179명의 찬성을 얻어야 신속처리안건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새누리당 의석수가 153석이기 때문에 야당 의원들의 찬성표 없이는 법안 통과가 불가능하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총선에서 60% 이상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인 셈이다. 어렵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더라도 법상 규정기일이 상임위 심사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이내로 돼 있기 때문에 최장 330일까지 법안이 계류될 수 있다.

이 밖에 쟁점 안건에 대해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로 여야 동수 6인의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토록 하는 제도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필리버스터제(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종료할 수 있는 제도 역시 소수당의 발목잡기로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