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정부·여당을 상대로 투쟁을 강화하면서 ‘국회선진화법’이 ‘국회마비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현행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야당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안겨줘 사실상 ‘야당의 허락’ 없이는 어떤 법안도 표결에 부쳐볼 수 없는 상황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이를 적극 활용해 성과없이 끝난 3자회동의 책임을 묻겠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극한 투쟁방침을 밝히고 각종 법안 처리에 ‘고통’을 안겨주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국회선진화법 도입을 주도했던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고, 일부에서는 다수결 원칙을 무시하는 국회선진화법이 위헌적 소지를 갖고 있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관련기사 5면

국회선진화법의 최대 문제는 쟁점 법안에 대해 신속처리제(패스트트랙)로 처리하려고 해도 안건으로 지정되기 위한 기준이 너무 높다는 데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려면 재적의원이나 상임위원회 재적위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통상적인 안건 처리도 야당의 협조없이 안 되지만, 신속처리의 길도 막혀 있어 사실상 모든 안건 처리가 안 되는 셈이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지 않을 경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야당이 쟁점 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하면 사실상 정기국회 내 처리가 불가능해진다. 야당이 위원장으로 있는 상임위가 많은 데다 법안 처리의 길목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도 민주당이 맡고 있어 야당과 합의없이는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법안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를 무기로 민주당은 ‘준법 투쟁’으로 국회를 무력화해 ‘야당의 존재감을 드높이겠다’고 밝히며 힘을 과시하고 있다.

여권 내에선 국회선진화법의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지난해 5월 김진표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와 함께 국회선진화법을 만든 주역이었던 황우여 대표는 직접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 대표는 이날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 폭력을 제거했지만 룰(rule) 안에서 법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대비에는 소홀한 점이 드러났다”면서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여야 의원들에게 주문했다”고 밝혔다.

민병기·김만용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