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한가위를 앞두고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한 권의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교보문고 직원들이 올해 나온 주목할 만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인생이 학교다?

매일매일 부딪히는 난관 속에서 오히려 두뇌근육을 단련한다면, 값싼 포장지의 활자에서 지혜를 건진다면, 인생이 학교다! 2008년 영국에서 문을 연 인생학교는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인생의 의미와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 강연과 토론, 멘토링,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인생학교’는 거침없는 주제의식, 본질을 꿰뚫는 독특한 관점, 지적이면서 명쾌한 해답이 도출되는 강연과 토론으로 유명하다.

쌤앤파커스에서 번역 출간한 6권의 단행본 ‘인생학교 시리즈’를 보면 저자들은 인생의 기쁨이 숨쉬는 비밀 장소들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알랭 드 보통이 기획하고 편집해 주제별로 책을 엮었다.

일·돈·섹스·정신·세상·시간 등 6권의 책은 모두 인생의 필수과목이다. 하지만 세상과 시간을 빼고,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일과 섹스, 돈, 정신 등 4가지 주제를 소개한다.

인생학교-섹스 /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미나 옮김

◆ 인생학교-섹스 = 인생학교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다. ‘우리 시대 연애학 박사’로 불리는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섹스라는 주제에 대해 철학적인 사색을 펼쳐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점잖을 뺀다.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은 섹시함 속에 담긴 그 사람의 철학과 세계관이라고. 책의 한 구절을 뚝 떼내어 읽어보자.

‘남자가 조금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슬쩍 묻는다. 언니와 바르셀로나에 여행 갔던 얘기를 하는 동안 거기가 축축하게 젖지 않았느냐고.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랬다고 대답한다. 정말로 카페에 있었던 내내, 심지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음료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던 순간에도 그랬다고. 그 말에 남자도 실토한다. 자기도 바지 안에서 페니스가 뻣뻣해져 있었다고.’ 카페에서 두 사람은 겉으로는 분별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드러내지 않았을 뿐, 마음속으로는 서로 다음 단계의 흥분으로 나아갔다. 표면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앞질러 몸은 이미 격정적으로 욕망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섹스가 두 사람의 이성을 압도하는 순간, 이들은 저마다 꿈꿔온 성적 판타지에 빠진다. 저자는 섹스의 본질을 명징하게 꿰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에서 “누구나 성생활을 하지만, 우리는 예외 없이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섹스에 대해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성적 기벽을 없애려고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섹스는 결코 기대만큼 단순해지거나, 유쾌해지지 않는다. 섹스는 근본적으로 민주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잔학성이라든가, 위반(違反), 정복하고 모욕을 주려는 욕망 같은 것들과 관련이 깊다. (중략) 야한 옷차림의 이성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 새벽까지 나이트클럽에서 노닥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비록 그 이성의 옷차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을 비벼보고 싶을 정도로 섹시하다면 말이다.”

저자는 포르노는 인생의 여러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갉아먹는다고 단언한다. 그는 인터넷 전체가 포르노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권태에 대한 우리의 인내심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금융분석가들은 포르노 산업의 가치를 연간 100억 달러로 평가한다. 이는 인력 낭비를 간과한 평가다. 저자는 “포르노 사이트를 힐끗거리거나 푹 빠져서 허비하는 시간은 연간 2억 인시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인시는 한 사람이 1시간 동안 일했을 때 일의 양을 말한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