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5일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왕능리 가은초교 실내체육관에서 강북힘찬병원의 한 물리치료사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물리치료를 하고 있다. 문경 =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요새 허리가 시큰시큰해서 잠도 잘 못잡니다. 병원에 가긴 해야 하는데 멀어서 혼자 갈 엄두도 안 나고, 돈도 많이 들고….”

“아이고 어르신∼ 뼈가 주저앉아 허리 신경을 누르고 있어서 아프신 거예요. 아드님께 알리시고 꼭 큰 병원 가서 진찰받으셔야 합니다.”

지난 5일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왕능리 가은초교 실내체육관. 마을 주민들을 진찰하던 정형외과 전문의 이상훈(41) 강북힘찬병원 주임과장의 얼굴엔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평생 농사를 업으로 삼아온 데다 평소 병원에 잘 들르지 않은 탓에 마을 주민들의 무릎, 허리 등의 건강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 과장은 “보통 시골마을 노인들의 경우 하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서울에 거주하는 비슷한 연령대 노인들보다 몸상태가 좋지 않다”며 “일부 어르신들은 수술시기까지 놓친 경우도 있는데 여태껏 어떻게 고통을 참아왔는지 깜짝 놀랄 정도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정형·신경외과 전문의 3명을 비롯해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강북힘찬병원 의료진 20여 명은 농촌 의료봉사 활동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마을을 찾았다.

강북힘찬병원은 지난해 9월부터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 혜택이 취약한 전국의 농촌 마을을 찾아다니며 무료 진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부터 농협중앙회와 의료 지원 협약을 맺고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던 중 노인 인구가 절대적인 이 지역 주민들이 관절·척추 질환을 많이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내려오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온 의사들이 무료 진료를 한다는 소식에 진료 대상으로 선정된 서문경농협 관내 지역인 가은읍, 마성면, 농암면 등에서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농협중앙회에서 마련한 버스와 승합차가 끊임없이 마을을 왔다갔다 하며 이날만 2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다음날까지 총 500여 명의 마을주민들이 진료를 받기로 돼 있었다.

임시 진료공간이 꾸려진 체육관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계속 밀려들자 의료진들은 쉴 새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3명의 전문의들은 환자의 병력 등을 기록한 문진표와 엑스레이(X-ray)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며 진료 활동을 펼쳐나갔다.

“선생님, 망치질을 하려 해도 팔이 아예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아픈데 많이 심각합니꺼.”

“어르신 인대가 파열됐을 가능성도 있으니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는 꼭 받으셔야 합니다.”

노인들의 이어지는 질문에 의사들은 일일이 눈을 마주쳐가며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또 환자의 몸상태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환부를 진찰하기도 했다.

진료 대상의 70∼80% 가량이 70세가 넘은 고령 노인인지라 귀가 어두운 경우가 많아 큰 목소리로 수차례씩 진료 결과를 설명해야 했지만 의료진들은 누구 하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감을 갖는 노인들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까지 건네주며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세심한 배려까지 보였다.

진료를 마치고 물리치료 코너로 이동하던 윤경한(79) 어르신은 “무릎이 많이 아픈데도 사정상 병원에 가지 못했는데 도시에서 의료봉사를 왔단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이곳을 방문하게 됐다”며 “보통 병원에 가면 의사들이 궁금한 점이 있어도 대충 대답해 주는 경우가 많은데 강북힘찬병원 의사들은 노인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친절히 상담해 줘서 고마운 마음”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다른 대다수 노인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오후까지 지역 노인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바람에 의료진들은 점심 끼니까지 미루고 봉사활동에 매진해야 했다. 하지만 오전보단 진료 속도가 빨라지며 한층 여유있게 환자들을 응대할 수 있었다. 안내데스크에서 대기 번호표를 받은 노인들은 문진, 엑스레이 촬영, 진료 및 상담, 물리치료, 투약 등의 과정을 차례로 거쳤는데 처음엔 각 단계마다 사람들로 붐비며 대기 시간이 길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료진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힘을 발휘하며 마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업무가 효율적으로 진행됐다.

어르신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던 물리치료 코너에서 만난 임형주(여·24) 물리치료사는 “점심 식사까지 미루며 물리 치료를 수행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배고픈 줄 모르겠다”며 “오늘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치료를 끝낸 어르신들은 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장수사진’ 코너에서 무료 사진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이곳에 마련된 양복과 색색의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마치 20대로 돌아간 듯 수줍은 미소를 띠며 사진을 찍었다.

김중기(57) 서문경농협 조합장은 “농촌 지역은 모든 환경에서 열악한데 강북힘찬병원에서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마을을 방문해줘 큰 힘을 얻었다”며 “평생을 일하며 얻은 어르신들의 관절염이 한 번에 치유되진 않겠지만 분명 심적으론 큰 위안을 얻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문경 =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