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保革갈등 진보 사회단체인 ‘민중의 힘’ 회원들(왼쪽 플래카드 뒤)이 지난 8월 22일 새누리당사 앞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대정부 규탄집회를 열고 있고, 이에 맞서 자유청년연합, 애국주의연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맞은편에서 종북세력 엄단을 주장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종북세력이 활개를 친 데는 좌표를 잃은 진보진영에도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포퓰리즘에 몰두하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보수진영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보수진영은 시민들이 공감하는 논리(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했고, 새로운 시대 정신을 만들어 내지도 못한 채 ‘꼴통’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다. 논리도 도덕성도 반성도 없으며 공부까지 안 하다 보니 종북마저 제압 못하는 ‘무능’ 보수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들은 왜 꼴통 소리를 듣는가’라는 질문에 이상돈(법학) 중앙대 명예교수는 11일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꼴통 짓을 하니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혐의 사건이 터지자 보수세력 일부가 마치 진보진영에 한판 승리라도 거둔 듯 기세등등하며 들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며 “생각이 다른 절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때그때 시류에 편승해 반사이익만 추구하는 보수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의 보수가 취약한 것은 “권력에 무임승차해온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보수는 1997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권력의 그늘에 늘 안주해왔다. 이 때문에 ‘보수=부패’ ‘보수=나태’의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돼왔다. 보수적 가치를 신봉하면서도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 같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특히 보수 시민단체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보수진영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보수시민운동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며, ‘어젠다의 부재’뿐 아니라 신뢰의 한계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보수 단체는 시민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면서 시대를 선도하는 정체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진보진영 시민단체들이 지지층과 호흡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만들고 전성기를 누렸던 것과 대조된다.

보수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진 데는 진보진영이 만들어낸 ‘프레임’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진보는 좋고 보수는 나쁘다는 프레임이다. 보수진영이 이 같은 프레임을 제압하지 못하는 것은 보수의 무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인 셈이다. 류석춘(사회학) 연세대 교수는 “바른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 ‘꼴통’이라는 네이밍에 갇혀 무슨 말을 해도 꼴통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 보수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권영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한국 보수주의의 문제점과 관련해 “권력과 권력기반 간의 협치(協治)에 대한 훈련이 안 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권 부소장은 “보수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반공이라는 추상적인 틀에 묶여 새롭게 변하는 시대에서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며 “보수의 자기혁신이라는 차원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보수에 희망은 있다. 권 부소장은 “보수의 변화와 정권의 변화가 괴리를 나타내서는 안 된다”면서 “보수의 자기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균열이 아닌 통합적으로 가야 국가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보시민운동과 마찬가지로 보수진영도 당파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운동은 정치적 갈등 공간에서 중립적으로 시민적 이해를 지켜주는 것”이라며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데 당파성 때문에 총체적 분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그동안 노인단체 위주의 보수단체 시위 등에서 보여주던 모습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10∼20대들이 온라인에서 보여주는 보수 색채들은 새로운 변화”라고 말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