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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영/건국대 교수·부동산학

현오석 부총리가 최근 한 간담회에서 “투자 활성화 대책 다음에 할 것은 산업단지의 입지 문제”라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누지 않고 기능적으로 접근해 규제를 풀겠다”고 밝혔다.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과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지역 개념 대신 기능별 접근을 하겠다는 것이다.

부총리의 희망과 달리 벌써 지방의 시·도지사, 의회, 언론 모두가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 패턴은 이미 진부하다. 중앙정부나 수도권 시·도가 규제 완화 필요성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지방에서 총력을 다해 반대해서 규제를 지키는 모습이 2~3년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지역 간 균형발전은 서울의 인구가 매년 무려 10%씩 증가하던 1960년대 중반부터 국가적 시책으로 추진됐다. 1970년대부터는 광역 수도권으로 정책 대상이 확대됐고, 단편적인 시책들을 종합해 1982년에 ‘수도권 정비 계획법’을 제정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을 억제하려면 수도권에서 밀어내기(push)와 지방으로 당기기(pull)가 병행돼야 했겠지만, 정부가 지방에 재원이나 권한을 줄 여유도 의지도 없었다. 때문에 수도권의 인구를 밀어내기 위해 공장, 대학, 대형 건물, 택지개발 등의 입지를 규제하는, 돈 안드는 내용으로 법이 이뤄져 있다.

무려 5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해왔지만, 아직도 지방에서는 ‘이제는 균형이 이뤄졌다’고 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1인당 소득을 100달러 남짓에서 2만2000달러까지 올리는 엄청난 성과를 거둔 나라가 왜 지역균형에는 실패했을까?

그 이유는 ‘균형’이 무엇인지 정의되지 않은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공장, 특히 대기업 공장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 균형이라고 생각했었다. 1인당 소득을 기준으로 균형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수도권 제조업은 영세한 저부가가치 공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1인당 지역 총생산도 전국 시·도 중 중위권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국가 중추 관리기능의 분산을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나 혁신도시들을 건설해 정부 부처, 공기업,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완성되면 균형론자들은 대기업 본사나 벤처기업, 서비스업체들에 눈독을 들일 게 뻔하다.

‘균형’을 정의하지 않고 균형정책을 추진하므로 지역균형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정책 목표다. ‘선 균형, 후 규제 완화’를 말하지만 그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지역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이 상태가 편리하다. 중앙정부에서 예산과 사업을 따내는 데는 지역 균형발전만큼 좋은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5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서울의 인구는 정체됐고 수도권 인구증가율은 1% 미만이다. 비수도권의 1인당 지역총생산은 수도권보다 15%나 높다. 수도권 입지를 막으니 기업들이 외국으로 나가든지 아니면 아예 사업을 접는 예가 많다. 우리보다 앞서 수도권을 규제했던 프랑스나 일본 등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를 폐기했다. 이런 여건 변화를 감안하면 규제의 완화나 폐기를 검토할 때가 됐다.

그렇지만 지역의 입장에서는 지역균형을 외치고 수도권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게 당연하다. 잘되면 중앙정부로부터 큰 선물을 끌어낼 수 있고, 잘못돼도 본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가의 발전 방향을 성찰하고 국민을 이끌어야겠지만,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심지어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합리적 논의를 해야 할 시·도 산하 연구소들마저도 수도권·비수도권으로 편이 갈려 말싸움하는 기술만 연마하고 있다. 각자 자기 앞가림하는 데만 급급하다면, 대체 대한민국 전체의 장래는 누가 걱정하고 있는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