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1일 경기 이천시 율면 부래미마을을 찾은 조병현(왼쪽) 서울고등법원장과 최원병(오른쪽) 농협중앙회장이 1사1촌 법률상담 및 봉사활동을 한 후 떡메치기를 하고 있다. 이천 = 정하종 기자 maloo@munhwa.com

“가장 훌륭한 변호사는 ‘증거’입니다. 휴대전화로 계약 현장을 찍어두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경기 이천시 율면 석산리 부래미(富來美) 마을. 이 마을 체험관에서는 ‘제 1회 농촌법률학교’가 열렸다. 강사로 나선 서승렬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법 없이도 살아가는 시골’이라는 말은 옛말”이라며 “상속 문제 등 시골에서도 분쟁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 판사는 시골 어르신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상속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강의를 펼쳤다. 그는 “자필로 쓴 유언장이라도 ‘2013년 7월’이라고 끝을 맺으면 날짜를 구체적으로 쓰지 않아 무효임을 기억해야 한다”며 “집에 날아온 법원 서류도 꼭 확인하고 대응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법원의 채권 추심 송장을 무심코 넘겼다가 채권자에게 기존 채권액의 20배가 넘는 1억여 원을 독촉받은 할머니를 예로 들며 “간단한 법률지식은 꼭 기억해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농촌법률학교는 이날 서울고법과 농협중앙회가 부래미마을에서 체결한 ‘찾아가는 법원, 행복한 농촌’ 업무협약의 일환으로 열렸다. 두 기관은 농촌법률학교 운영 등을 통해 법률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에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농촌 지역은 다문화 가정 이혼, 농작물 피해 보상 등 소송이 점차 늘고 있다. 서울고법에 따르면 의정부·인천·수원·춘천지법 관내 시·군 지역의 형사 소송은 2010년 3500여 건에서 2012년 4500여 건으로, 같은 기간 민사소송은 1만1183건에서 1만1792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진현민 서울고법 공보판사는 “농촌지역에 다양한 민·형사 및 가사 분쟁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법률구조인력이 도시 위주로 집중돼 있어 농업인들이 법률구조를 제대로 받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에 서울고법이 농촌지역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지닌 농협과 업무협약을 맺고 법률 서비스 제공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생활법률 강의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부래미마을 어르신 및 주변 마을 어르신 15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날 강의를 들은 유인수(80) 할아버지는 “상속, 회생 등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어 너무 좋았다”며 “법을 몰라 피해를 보지 않도록 앞으로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부래미마을에서는 법률 강의와 더불어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마을 그린스쿨관에서는 농협이 강남힘찬병원 등과 함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 검진을 실시했다. 또 NH개발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장수사진(영정사진)을 촬영해주는 행사도 열렸다.

이날 행사장을 찾은 조병현 서울고등법원장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장수사진 촬영을 하는 봉구남(80) 할머니에게 “어르신, 화장이 잘 먹어 사진이 참 잘 나오겠습니다”고 말했다.

이에 봉 할머니도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내 발로 사진관을 찾아가기가 참 어려운데, 이렇게 농협에서 최신식 카메라로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니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을 한쪽에서는 농촌체험관도 운영되고 있었다. 떡메치기 등을 하며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 등을 알리는 행사였다. 조 법원장과 최 회장은 이곳에서 직접 떡메치기를 하며 우리 농산물을 홍보했다.

조 법원장은 “어릴 때 시골에서 해봤던 기억이 있어서 낯설지 않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최근 청소년들이 밥 대신 빵을 먹는 등 식습관이 바뀌어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등 문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이 맛 좋고 영양가 많은 우리 농산물을 많이 소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기열 부래미마을 위원장은 “법원장님과 중앙회장님이 작은 마을을 찾아 영광”이라며 “지속적으로 이 같은 관계가 이어져 농촌사람들이 법률지원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천 =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