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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퉁, 휙∼ 퉁.”

강하게 휘두른 배드민턴 라켓에 맞은 셔틀콕이 시원스레 허공을 가른다. 여유 있게 스텝을 밟으며 공중에 뜬 셔틀콕이 사정권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경쾌하다.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상대를 향해 셔틀콕을 꽂아 넣는 스매싱이 일품이다.그런데 배드민턴 복식조의 조합이 좀 독특하다.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1명과 40대로 보이는 남자 2명, 그리고 앳돼 보이는 학생도 끼어 있다. 조금 전 스매싱을 성공시킨 주인공은 바로 어르신. 어르신과 한 팀을 이룬 학생은 상대팀을 향해“(셔틀콕을) 잘 받아보세요”라며 호기를 부린다. 이에 불의의 일격을 당한 상대팀도 심기일전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서브 넣을 준비를 한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수서청소년 수련관 실내체육관에서 지난 5일 만난 오세덕(76) 씨 가족은 ‘활기’ 그 자체였다. 조금 전 상황은 할아버지 오 씨와 손자 승택(20) 군이 한 팀이 돼, 아들 현석(47) 씨 팀을 향해 셔틀콕을 꽂아 넣는 장면이다. 이들 삼대(三代)는 매주 토·일요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배드민턴을 친다. 삼대가 나란히 주말 아침운동을 즐기는 모습은 요즘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엔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오 씨는 배드민턴이라는 운동도 재밌지만 온가족이 함께 아침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좋다고 한다. 사실 오 씨는 경희대에서 사회과학대학원장까지 지낸 명망 있는 행정학자다. 하지만 요즘은 배드민턴 예찬론자에 더 가깝다. 이날 만난 오 씨에게선 70대의 쇠한 모습이 아닌 젊음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오 씨는 “생활체육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점에 주변 사람들에게 배드민턴을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며 “남녀노소가 함께 할 수 있어 고독하지 않고, 운동량이 많으며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재미까지 있어 최고”라고 배드민턴 예찬론을 펼쳤다.

아들 현석 씨도 아버지의 권유로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됐다. 아버지 오 씨로부터는 분가를 했지만 인근에 거주하며 매주 아침 함께 운동을 한다. 경력 9년차인 현석 씨는 이제 선수급의 실력을 갖췄다. 본인도 아버지처럼 배드민턴에 빠져 지금은 현재 활동 중인 강남배드민턴 클럽의 총무이자 강남구 배드민턴 클럽 연합회 총무까지 맡고 있다.

현석 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과 함께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며 “우리 클럽에서도 삼대가 함께 주말 아침에 배드민턴을 치는 것을 무척 부러워한다”고 전했다. 그는 “아들 녀석도 지난해까진 입시 준비 때문에 배드민턴을 치지 못했는데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다시 시작했다”며 “어머니도 나와 응원해주셔서 주말 아침이 즐겁다”고 덧붙였다.

승택 군은 지난해 운동을 잠시 쉬었지만 라켓을 쥔 지 5년이 넘은 실력자다. 그는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못 나눴는데 배드민턴을 하면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 배드민턴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교 시절 배드민턴으로 만난 친구들과도 여전히 교류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고.

오 씨의 부인인 심정자(71) 씨는 오 씨가 1970년대 중반 처음 배드민턴을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 호흡을 맞췄지만 최근엔 허리 수술을 해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날도 체육관 한 쪽에서 가족이 함께 땀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오 씨는 “과거 생활체육의 개념도 없을 때부터 배드민턴을 즐겼다”며 “경희대 재직 시절에도 주변 교수들에게 배드민턴을 권유하며 운동하라고 채근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정(五正)운동’을 강조했다. 오 씨가 말하는 ‘다섯 가지 바른 운동 자세’란 바른 마음(正心)으로 바르게 운동(正動)하며 바르게 먹고(正食), 바르게 휴식(正息)하고, 바르게 자는 것(正眠)이다. 그는 “이 중에서 바르게 운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평소 몸을 바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오 씨와 함께 운동하는 이들은 오 씨에 대해 “젊은 사람의 스매싱 같다”며 그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 오 씨는 “주변에서도 인물이 밝다는 덕담을 자주 건네는데 이 모두가 운동을 매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운동을 즐기는 오 씨 삼대 간에는 엄격한 규칙이 있다. 바로 운동을 마친 이후엔 불필요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 ‘오늘 배드민턴 실력이 평소보다 못했다’는 등의 잔소리는 상대방의 기분만 상하게 할 뿐이라는 게 오 씨의 지론이다.

3시간가량의 아침 운동을 마치고 나가며 오 씨는 “가정이 화목하려면 기본적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며 “배드민턴과 같은 운동을 함께 하며 화목과 건강을 누리고 있다는 게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30년 넘게 배드민턴을 즐겨 온 오세덕(76·가운데) 씨와 아들 현석(47·왼쪽) 씨, 손자 승택(20) 군이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수서청소년 수련관 실내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친 후 나란히 누워 환하게 웃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