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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님이 바쁘셔서 어렵고 힘드시겠지만, 제가 아내와 딸에게 돌아갈 때까지만 계속 멘토가 되어주세요. 부유하고 올바른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보다 가난하고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람이 사고를 많이 치잖아요. 저 역시 그렇지만 검사님께서 착하게 살 것이라고 믿어주신다면, 그 믿음에 실망 드리지 않게 더 열심히 살게요.”

울산지검 특수부 이순옥(여·35·사법연수원 35기·사진) 검사는 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모(21) 씨로부터 즐거운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최 씨는 비록 몸은 갇혀 있는 수감자였지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밝고 건강했다. 최 씨는 편지에서 “죄를 짓는다고 벌만 주면 더 삐뚤어지지만 (앞으로) 죄를 짓지 않고 착하게 살 수 있도록 조언과 인도를 해준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검사님은 저에게는 그런 것을 해주고 계신 분”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어찌나 또박또박 눌러썼는지 새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은 그의 절절한 마음은 이 검사에게 지금까지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여검사와 조폭 수감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11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항 지역의 조직폭력배였던 최 씨는 자신의 동거녀인 권모 양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조직을 탈퇴하려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조직은 그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았고 보복폭행까지 시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최 씨는 급히 차량을 몰고 조직원들로부터 도망가려다 그만 뺑소니 사고를 냈고 그로 인해 멀쩡한 40대 남성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사건을 배당받은 이 검사는 최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 씨의 동거녀이자 미성년자인 권 양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 검사는 권 양의 열악한 상황이 최 씨를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고 판단하고 권 양을 직접 찾아가 출산장려금지원제도를 안내해주는 등 물적·정신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이 같은 노력은 면회를 간 권 양을 통해 최 씨에게 전해졌고 불행을 온몸으로 안고 있는 듯 보였던 최 씨가 조금씩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최 씨는 수감 직후 이 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죄 많은 저를 관심으로 대해주셔서 이렇게 감사 글을 적는다”며 “(제가) 사랑스러운 가족을 힘들게 하고 실망감을 주었지만, 남들보다 몇 배로 사랑하면서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검사는 지난해 말 딸을 출산한 권 양에게 동화책 등의 선물을 보내주는 등 최 씨 일가와 인연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이 검사는 2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 씨의 가정환경, 사건의 배경, 임신한 동거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걱정해주자 최 씨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며 “조사과정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소통해야 피의자도 진심으로 반성하게 되고, 사건의 진실에도 가까워진다는 것을 저 역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검사는 지난해 12월 30일 제1회 우수 인권검사로 선정돼 법무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현일훈 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