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공격적 양적완화 정책으로 촉발된 환율전쟁이 미국과 유럽에서 ‘자동차 전쟁’으로 불거지면서 정상적인 시장질서 왜곡 및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엔저로 무장한 일본 업체들은 가격경쟁력으로 판매가 늘어날 전망이어서 현대·기아자동차는 물론 GM, 크라이슬러, BMW, 벤츠 등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마다 비상이 걸렸다.

11일 미국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엔·달러 환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보이면서 시장잠식의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는 지난해 달러당 80엔대에 머물렀던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90엔을 넘은 93.93엔을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게 되면 토요타와 닛산,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환평가에 따른 영업이익이 증대해 판매 가격을 낮추거나 기존보다 많은 옵션을 제공해 소비자들을 붙잡을 수 있다. 노무라증권은 엔·달러 환율이 1엔 상승하면 토요타의 연간 영업이익이 350억 엔(약 4062억 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인 디트로이트에서는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과 함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강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울려 퍼지고 있다. 매트 블런트 미국 자동차정책위원회(AAPC) 위원장은 “아베 정권의 엔저 정책은 시장을 왜곡하고, 미국 제조업자들의 일자리 창출 노력을 무너뜨리고 있다”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아베 정권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미국 자동차 업계는 일본의 엔저로 인해 회복기에 들어간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기반을 잃고 주저앉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하고 있다. 블런트 위원장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업계는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든 구조조정을 통한 회복단계에 접어들고 있는데 일본은 이 같은 과정을 피하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독일의 BMW, 벤츠, 폭스바겐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면서 일본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외치고 있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