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LA올림픽 여자 400m 허들 결승전, 나왈 엘무타와켈리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엘무타와켈리의 금메달은 금메달 이상의 ‘시대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여성으로는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이자, 무슬림 여성으로는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기 때문이죠.

그의 금메달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무슬림 국가의 여성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구속에서 해방시켜 줘 고맙다”는 무슬림 여성들의 감사 편지가 그에게 쏟아졌답니다. 조국인 모로코에서도 그의 금메달은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모로코 국왕 하산 2세는 금메달을 딴 그에게 축하전화를 걸었고 우승 당일 태어난 모든 모로코의 여자아이의 이름에 ‘나왈’이 포함돼야 한다고 선언까지 했습니다. 그는 은퇴 후 모로코의 체육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위원을 거쳐 1998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된 그는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IOC의 내각으로 불리는 집행위원으로 새로 선출됐습니다. IOC 집행위원회 여성위원은 이로써 3명으로 늘었습니다. 외신에 따르면 엘무타와켈리는 내년 9월, 12년간의 임기를 모두 끝내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후임으로도 이름이 오르내리더군요.

한국 스포츠의 지식기반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창립된 ‘국제스포츠협력센터(ISC·이사장 김용순)’의 초청으로 지난해 12월 14일 한국을 방문했던 엘무타와켈리 위원은 “스포츠가 여성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김연아를 예로 들며 “김연아 같은 여성 선수가 세계에 얼마나 큰 영감을 주는지 보라. 20세기 초와 비교하면 현재 여성이 스포츠에 참여할 기회가 크게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스포츠 행정 현장에서는 아직 여성의 영향력이 부족하다. 앞으로 스포츠 행정 분야에도 여성의 참여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성과 국제스포츠 협력’이라는 주제로 한 그의 스피치는 한국 스포츠계에 시사하는 바 큽니다. 한국 스포츠는 그동안 여성들의 덕을 많이 봐 왔지만 여성 스포츠 행정가는 ‘제3 세계’ 만큼이나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는 22일 열리는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 ‘사라예보 신화’의 주역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도전장을 냈습니다. 여성 체육인으로는 도전 자체가 처음이어서 참신하게 느껴집니다.

이 의원은 “여성 대통령이 나온 만큼 세상이 변했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고, 체육계에도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도전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의원이 한국의 나왈 엘무타와켈리가 될 수 있을지 결과가 기다려집니다.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