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을 불과 한 달여 앞둔 1988년 여름, 남자 탁구 에이스인 김기택이 쓰러졌습니다. 당시 대표팀은 기흥훈련원에서 합숙해 왔는데 훈련원에서 딱 7㎞ 떨어진 관악골프장까지 왕복하는 구보가 일과의 시작이었습니다. 평발인 김기택은 원래 달리기가 시원치 않았는데 더운 날씨 때문인지 구보를 마치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기절한 것이죠.

깜짝 놀란 강문수 남자 코치는 김기택을 들쳐 업고 가까운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우선 링거 주사부터 꽂은 의사는 “과로하면 급성 맹장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답니다. 늘어져 있던 김기택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나 “절대 수술하면 안 된다”고 외치더니 다시 쓰러졌답니다. 김기택은 응급처치를 받고 수원의 큰 병원으로 가 4시간 동안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큰 이상은 없고 피로 누적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 중국과의 남자 단체전 결승 마지막 단식에서 후이준을 꺾고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둬 스타가 됐던 안재형은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13번이나 발바닥의 물집을 따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꼴입니다. 강문수 코치가 그때마다 실을 바늘에 꿰어 물집을 땄답니다.

86, 88을 앞두고 누구도 한국 탁구가 중국을 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86 당시 한국-중국의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한국이 리드하자 당시 중국 대표팀 사무장이었던 리푸룽(李富榮) 씨가 귀빈석에서 코트로 뛰어나가 양복 상의를 벗고 심판에게 거칠게 항의하던 모습에서 그때 중국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탁구가 상대가 되지 못했던 중국을 연거푸 꺾은 것은 오직 땀과 열정 덕분입니다.

차이전화(蔡振華), 현역 시절 이질러버로 세계정상권에 섰고 현재는 중국 탁구협회장이자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 후보로 중국내 서열이 350위 안에 드는 인물로 크게 출세했습니다. 바로 그 차이전화가 “(경쟁 상대가 없는) 오늘의 중국 탁구는 한국 덕택에 가능했다”고 했습니다. 1985년 이탈리아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던 그는 전지훈련차 서울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 본 한국선수들의 눈빛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차 방한해 한국 탁구인과의 술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1991년 중국 대표팀 감독이 된 차이전화는 정신력을 강조합니다. 베이징올림픽을 준비 중이던 2004년, 4명의 여자대표를 “행실이 좋지 못하고 훈련을 게을리한다”며 대표팀에서 제명한 것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한국 탁구는 최근 상비군 선발전을 거쳐 새 대표팀을 구성했고, 곧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선임할 계획입니다. 새 코칭스태프는 명성이 아닌 86, 88을 준비할 때와 같은 열정을 보여줄 수 있는 지도자들을 뽑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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