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서울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승. 예선 4위에 랭크된 박종훈은 결승에서 10점 만점을 받아야만 동메달이 가능했습니다. 당시는 예선과 결선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결정했습니다. ‘체조요정’ 코마네치 이후 국제체조연맹(FIG)은 신(神)의 경지를 의미하는 만점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규정을 고친 이후라 한국 체조사상 첫 메달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박종훈의 차례. 당시 박종훈의 기술은 ‘손 짚고 앞 돌아 몸 펴 앞 공중 돌며 한 바퀴 반을 비트는 기술’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비틀기 횟수를 늘려 ‘여2’ ‘양1’ 등으로 진화하며 한국이 도마 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근간이 된 기술이기도 합니다. 박종훈은 착지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기자는 ‘그래도 과연 10점이 나올까?’ 조마조마했는데 기적같이 10.00이 전광판에 찍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박종훈은 결국 19.775점으로 중국의 로우윤(19.875), 동독의 실비오 크롤(19.862)에 이어 동메달을 땁니다. 서울올림픽 남자 기계체조에서 10점 만점은 박종훈이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0점 만점의 배경에는 김상민 당시 대한체조협회 전무이사가 있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한국 체조선수로는 최초로 1960 로마올림픽에 출전했던 김상국 전 경희대 교수의 동생이기도 한 김 전무는 서울올림픽 당시 FIG 임원과 심판의 접대를 담당하는 중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체조와 같이 심판의 주관이 크게 작용하는 종목에서는 좋은 이미지가 중요합니다. 한국 체조의 첫 동메달은 융숭한 접대를 받은 심판들이 준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국 체조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양학선의 성공 배경에는 ‘양1’의 높은 기술점수가 있습니다. 체조협회는 2011년 세계 정상급 선수와 유명 심판을 초청해 코리아컵 국제체조대회를 개최합니다. 양학선이 이 대회에서 선보인 기술에 대해 FIG 기술위원회는 도마 기술 중 최고 점수인 7.4점을 주기로 합니다. 그 덕분에 양학선은 착지에서 작은 실수를 해도 난도 점수가 워낙 높아 다른 선수들보다 유리한 입장에 섰습니다.

최근 FIG는 2013∼2016년용 남자 기계체조 채점 규칙을 개정하면서 ‘양1’을 6.4점으로 조정했는데 기존 7.2점이었던 다른 두 기술의 점수를 ‘양1’과 동급으로 만들었습니다. 애초 ‘양1’의 기술점수 배정에 상당한 배려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체조협회는 이렇게 양학선의 금메달을 잉태시켰던 코리아컵 대회를 올해에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후원사 계약 등의 문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년 5월이나 6월 개최를 목표로 준비를 계속할 방침이라고 합니다만, 혹시 ‘이제 금메달도 땄으니…’하는 ‘포만감’ 에 대회를 포기하지는 않나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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