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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추석연휴는 휴일과 겹쳐 개천절과 이어지는 징검다리 연휴를 빼고 나면 단 하루를 더 쉴 따름입니다. 경기 불황으로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은 데다, 휴일도 쥐꼬리만큼 짧으니 추석 명절을 맞는 마음이 예년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저마다 바쁘게 살던 가족들이 명절날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둥글게 모여 앉아 나누는 행복은 얼마나 소중한지요. 게다가 청명한 가을의 초입에 꿀맛 같은 휴식을 통해 일상에 쉼표를 찍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오랜만에 주어진 연휴에 문화일보 북리뷰 팀이 독자 여러분들에게 ‘책읽기’를 권합니다. ‘행복’ ‘성찰’ ‘모색’ ‘위안’. 문화일보 북리뷰 팀이 추석 연휴에 콕 찍어 추천하는 책의 4가지 주제입니다. 이 주제에 걸맞은 책 6권을 뽑아봤습니다. 연휴 동안 짬을 내서 이 책들을 손에 잡으신다면 추석 명절이 좀 더 따스해지리라 믿습니다.(촬영 협조 교보문고)

글 = 예진수 기자, 사진 =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 행복 ] 두근두근 내 인생 / 김애란 지음 / 창비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에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어보자. 젊은 부모와 나이 든 아들이라는 두 겹의 생명무늬가 독자의 삶을 새끼줄처럼 꼬아가는 듯해 가슴이 아릿해진다. 복(福)과 장수를 기원하는 풍요로운 축제일인 추석에 조로증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한 청소년의 삶을 그린 소설을 읽는 것은 역설일 수 있다. 조로증은 미처 다 자라기도 전에 누구보다 빨리 늙어버리는 몹쓸 병이다. 나이 든 젊은이, 혹은 창창한 젊은 생각을 갖고 있는 늙은이의 고민과 번민은 독자들의 마음에 따뜻하면서도 짠한 물결을 일으킨다.

핵가족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명절을 제외하면 3대가 함께 모여 오손도손 얘기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다. 최근 폭력적인 사회 흐름 속에서 한국의 많은 가족들이 마음에 화상(火傷)을 입기도 했다. 때로는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진실을 회피하려 한다. 가족들의 깊은 상처나 갈등을 어색한 웃음으로 눙쳐버릴 때도 많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 간 애증의 얽힘과 풀림에 대해 제대로 ‘두근두근’거리며 다가설 수 있다.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이 책은 내년에 영화화된다. 영화 ‘완득이’ 못지않은 인기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출구 없는 여린 젊음이 조로증이라는 희귀병으로 스러지는 비극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능청스러운 웃음이 있고,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만드는 행복의 지혜가 숨쉬고 있다.

2002년, 약관의 나이로 등단한 이래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 권의 소설집만으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2000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도 김애란에 대해 “넘치는 유머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 조롱할 줄 아는 자세를 가진 놀라운 작가”라고 평했다. 이 책 역시 진실한 기쁨과 행복에 조우하기 위해 비극을 밝음과 해학으로 바꿔놓는 도발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생기발랄한 문장 속에 드러나는 가족애 = 책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청춘과 사랑에 대한 눈부신 이야기를 다룬다. 관광단지 공사가 한창인 마을. 아직 자신이 자라서 무엇이 될지 모르는 열일곱 철없는 나이에 덜컥 아이를 가진 부모가 있다. 어린 부모는 불안과 두근거림 속에서 살림을 차린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태어난 아이 ‘아름’은 누구보다 씩씩하고 밝게 자란다. 하지만 아름은 조로증이라는 비극적 병을 앓게 된다. 이것을 감내하며 기적 같은 청춘을 살아낸다.

그는 그룹 검정치마의 노래 ‘안티프리즈’ 가사처럼 춤을 추며 절망과 싸워나간다. 그에게 춤이란 소설이다. 환자복을 입은 아름은 아버지와 함께 스프링이 달린 사각형의 탄력 있는 매트 위에서 뛰어오르는 트램펄린(일명 방방이)을 발견했다. 아름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이다.

“그리고 점프/ 한 번 더 점프/ 아, 나는 지금도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퉁-하고 내가 튀어오르면 퉁-하고 아버지가 튀어오르고/ 다시 퉁-하고 아버지가 날아오르면, 퉁-하고 내가 따라 오르던 봄날의 호흡.(중략) 내가 한 번씩 점프할 때마다 점점 젊어지는 것/ 팔십이었다가 육십이었다가 열일곱이 되는 것/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진짜 내 나이가 되는 것.”(145∼146쪽)

그의 이런 소원은 꿈속에서나 이뤄질 뿐이다.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아름이지만 누구보다 충만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름의 입을 빌린 작가의 감각적인 글솜씨가 돋보인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그게 뭔데요?”/“미안해하지 않는 거야.”/“왜요?”/“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네.”/“흔치 않은 일이니까……”/“………”/“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그러니까 너는,”/“네, 아빠.”/“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50쪽)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거란 걸 어머니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중략) 그동안 많이 참아왔다는 듯. 도저히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웃음처럼, 야유처럼, 박수처럼. 펑! 펑! ”(44쪽)

◆부모와 아들, 역할을 바꾼 상황극 = 부모와 자녀가 역할을 바꾼 뒤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는 상황극이 소설 군데군데서 펼쳐진다. 죽음과 고투하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는 늘 허둥댄다. 소설은 “혼자 바지 내리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17세의 아버지를 그린다. 지적인 성숙도나 삶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스승이다. 조로증 증상으로 눈도 뻑뻑해지고 몸이 너무 힘든 아들은 아버지에게 “에휴, 아버지도 나이 먹어봐요”라고 농을 건넨다.

조숙한 얼굴과 해맑은 청년의 마음을 가진 아들은 날카롭게 부모의 삶을 응시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어른이란 말 속에서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그것은 다름 아닌 외로움의 냄새”라고 꼬집는다. 아름은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한 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라고 스스로 답한다.

고통과 표현하기 힘든 울분 속에서도 재미있는 아들이 되자고 결심하는 아름에게서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뭐가 되고 싶어요, 아름인?”/(중략) 누가 그러는데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대요.”/“응, 그렇지.”/“건강한 것. 형제간에 의좋은 것. 공부를 잘하는 것. 운동을 잘하는 것.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 많잖아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중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냈어요. 그럼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식이 되자고.” (173쪽)

아름은 자신 때문에 모든 것을 상실한 부모에게 청춘의 추억을 돌려주기로 마음먹는다. 아름이 완성한 소설 ‘두근두근 이 여름’이 그것이다. 불치병으로 쓰러지고 망가지고 아파하면서도 온몸으로 쓴 슬픈 소설을 부모에게 바치는 아들. 부모 사랑 속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심장 뜨거운 얘기들. 이 대목을 읽는 이의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책 속으로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절망에 빠진 엄마는 한때 집을 나가려고 했다. 아름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오랜 세월 가슴으로 만지고 또 만졌던 말을” 어머니에게 털어놓는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어머니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예요.”/“……”/“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143쪽) 가슴뭉클하게 하는 말을 던진 아름은 긴 잠에 빠져들고, 다음 날 깨어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운명의 순간’이 아름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온다. 아들은 “잠에 취한 사람처럼 느리고 아둔하게” 말한다.

“아빠”/“응?”/ “그리고 엄마”/“그래”/그리곤 남아 있는 힘을 가까스로 짜내 말했다./“보고 싶을 거예요.”

◆내일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하루하루 생의 허무를 일찍 맛본 아름은 늘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자세로 산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영원할 수 없다는 의식이 그에게 인생의 경이로움, 다른 말로 하면 ‘두근거림’을 안겨줬다.

아름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났을까”를 늘 고민한다. 17세 소년의 마음과 80세 몸을 지닌 아름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 가족애는 ‘생명의 구원보트’다. 그에게는 글을 쓰는 5분간의 시간도 삶을 가꾸기에 충실한 시간이다. 아름의 글은 가슴 저미는 슬픔과 동거하지만 허허로움 속에서도 삶의 긍정을 길어 올린다. 나뭇잎의 바스락거림 속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삶의 편린을 발견하는 시인이다. 그의 앞에서는 누구도 섣부르게 절망을 얘기하지 못한다.

책 속에서 이 시대의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주인공 아름의 영혼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