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4일 일본 민간기업의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일제의 불법행위에 따른 피해를 배상받을 길이 열렸다.

하지만 개인이 외국 기업으로부터 ‘실질적’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지만, 정부는 외교마찰 등을 우려해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기세다. 정부가 개입되지 않은 민간 간 판결이기도 하지만, 대법원 판결과 정부 정책 간에도 분명한 해석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25일 대법원과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대법원의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청구에 관한 판결문과 정부 정책의 근간이 된 2005년 국무조정실 보도자료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이라는 기초적 판단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핵심쟁점인 ‘외교적 보호권’이 충실히 이행됐는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른 자금에 포함됐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뉘앙스 차이가 뚜렷하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서 정부가 국민 피해를 대신 청구하는 ‘외교적 보호권’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면,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는 협정에 반영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위안부 문제와 원폭 피해자, 사할린 강제이주는 아예 항목에서 제외됐지만, 강제징용은 대일요구 8개항목 중 5번째 항목에 ‘피징용 한국인 미수금’, ‘전쟁에 의한 피징용자의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고 명시돼 있다는 것.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정부는 2005년 국무조정실 보도자료에서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을 포괄적으로 지원받았다고 보고 있다”면서 “강제징용 문제는 청구권 협정 틀 속에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법원이 한일청구권 협정과 개인 청구권을 분리, 개인청구권을 인정한데 대해 동의하면서도 적극적 지원에 대해서는 다소 발을 빼는 이유다.

한일관계에 대한 고려도 적지 않다. 중국에 대비해 일본과의 협조가 중요한데, 독도·위안부 문제에 이어 강제징용까지 겹쳐져 외교갈등으로 비화되면 한일관계가 너무 자주 과거사 문제에 발목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 협상에 중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외교부 관계자는 “위안부 문제와는 다르며, 향후 확정판결까지 일단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