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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식객 임지호를 키운 것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팔할이 바람’이었다. 길을 떠돌며 자연의 수많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바람이 키운 그의 삶에도 사람의 사랑은 깃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걸어온 나날들이 허공에 흩어져 가는 허랑한 것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195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임지호는 어린 시절 “주워왔다”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자랐다. 그는 한의사 집의 서자(庶子)였다.

생모는 그를 홀로 키우다가 그가 세 살이 됐을 때 친부에게 맡기고 떠났다. 본가(本家) 어머니는 그 몇 해 전 친아들을 홍역으로 잃었다. 그는 집안의 대(代)를 잇는 독자(獨子)가 됐지만, 걸핏하면 집을 뛰쳐나와 바깥 세상을 떠돌았다.

그는 열한 살 때 처음으로 가출한 이유를 “세상이 궁금해서였다”고 답했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가르쳤다. “첫째, 남의 물건은 티끌 하나도 탐내지 마라. 둘째, 남의 집에서 일할 때는 주인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라. 셋째, 조상에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하지 마라.”

한의학을 공부한 아버지는 그에게 “자연의 모든 재료가 생명을 살리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고 일러줬다. 그가 훗날 자연요리 연구를 하게 된 바탕이 그 말씀 속에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네 누나와 함께 들에 나가 쑥을 캐며 자연의 재료가 음식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셋째 누나는 이복(異腹)의 남동생을 특별히 아껴주었다.

가출을 일삼던 10대 때 출가한 누나에게 찾아가면 따뜻하게 품어주며 이렇게 말해줬다. “험한 욕을 하지 마라. 네 삶이 그렇게 된다. 훌륭한 사람의 모습을 항상 가까이 해라. 그러면 너도 그렇게 된다.” 그가 숱한 시련 속에도 세상을 저주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한 사랑의 말씀이었다.

그는 자신이 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한 거지의 말씀’에 있다고 밝혔다. 전국을 떠돌던 시절에 그는 수많은 거지들을 만났다.

그 중의 한 사람에게 소주를 대접하며 물었다. “당신처럼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거지는 답했다. “기술이 한 가지 있다면 세상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임지호는 가난 때문에 첫번째 아내와 헤어졌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기분이 더럽다.’ 두 아이의 엄마다. 헤어진 후에도 어렵게 산다고 해서 안타까웠는데 요즘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됐다고 하니 다행으로 여긴다.

음반업계에서 일하던 동갑 아내(강정애)를 만난 것은 17년 전쯤이었다. 이후 그에게 돈과 명성이 함께 들어왔다. 음식으로 세계인과 소통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 덕분이었다.

임지호가 끝내 언급하기를 꺼려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생모에 대한 평생의 그리움은, 자연 요리 연구가로서의 그를 크게 성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전국을 방랑하며 만난 할머니들을 그는 ‘어머니’로 섬기며 한국의 맛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이미지 크게보기 무협소설에 나오는 표현대로라면 ‘차 한 잔 식을 무렵’이었다. 임지호가 산마늘(명이나물) 쌈을 만들어낸 시간은 그토록 짧았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에 그가 말없이 집 주변의 야산으로 뛰어올라가더니 상수리 꽃잎을 따오고, 정원에서 명자꽃잎을, 뒤란에서 작은 파를 뜯었다. 주방으로 가더니 그것들과 산마늘을 양푼에 섞어 손으로 휘휘 저었다. 그러고 나서 밥과 함께 얼지 않은 돼지고기, 떡갈나무 꽃순을 넣고 비벼대는데 그 손길이 놀랄 만큼 빠르고 힘찼다. 레드와인 소스를 넣고 튀기는 과정을 거쳐 쌈이 완성되자, 뒷산에서 뜯어온 제비꽃과 작은 파로 장식을 했다. 스스로 “도적놈 같다”고 표현하는 투박하고 거친 손이 마술처럼 만들어낸 음식이었다. 이것을 입에 넣은 김연수 사진부 부장은 “살살 녹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