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에 예금보험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이를 국가 재정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해 파문이 일고 있다. 국민 세금인 정부 재정을 일부 저축은행 피해자 지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인 데다, 정부의 예산 편성권과 국가배상법 절차까지 무시하는 것이어서 만약 실행될 경우 경제적 충격이 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허태열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은 14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을 위해 예금보험공사의 예보기금을 우선 사용하되 사용 부분은 내년도 정부 재정으로 보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저축은행 사태는 정부의 정책과 관리·감독에 대한 잘못에서 비롯된 만큼 정부가 저축은행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부실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조치 법안’을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예금자나 보험 가입자 등의 부담으로 조성된 예보기금을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에 우선 사용하되, 사용된 금액을 정부 재정으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이는 5000만원 초과 예금자들에게 최대 55%까지 보상해 주기로 한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특별법이 금융질서 훼손과 위헌 소지가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자 재정 투입이라는 우회로를 만든 셈이다.

허 위원장은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국가배상법에 따라 정부에 소송을 걸더라도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나기까지 4~5년이 걸린다”면서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연령이나 생활 수준 등을 볼 때 이 기간을 견뎌내기 힘들어 특별법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특별법이 5000만원 초과 예금은 보장하지 않는 예금자보호법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에서 재정까지 투입하겠다는 방안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무분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 간부들의 횡령 등으로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정부가 책임져야 할 근거가 명확하다면 법이 정한 대로 국가배상법 절차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조동근(경제학) 명지대 교수는 “만약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를 위해 국민들의 혈세를 끌어다 쓴다면 앞으로 이와 유사한 요구가 끊임없이 생길 것”이라며 “선거를 앞둔 전형적인 포퓰리즘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석기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