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0만 스페인 국민들은 이제 위기와의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스페인이 유럽에서 다시 존경받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0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서 중도 우파 국민당(PP)의 승리를 이끌며 7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룬 마리아노 라호이 국민당 대표는 이날 스페인 국민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 4위국 스페인을 경제위기로 몰아넣고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사회당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심판의 장이었던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뒤 라호이 대표는 “심각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적은 없다. 우리 모두 희생해야 한다”며 험난한 길을 예고했다.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는 그는 이어 모든 지방 정부와 협의해 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라호이 대표의 말처럼 국민당은 승리의 기쁨을 느낄 사이도 없이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 앞에 서 있다.

스페인 경제는 21.5%라는 실업률이 보여주듯 심각한 상황이다. 청년 실업률은 45%에 달해 청년 2명 중 1명은 실업자 신세이고, 1400만가구는 무직 상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9.2%였던 재정적자 규모를 올해에는 GDP 대비 6%로 낮출 계획이지만 현재로서는 달성이 어렵다.

지난 17일에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6.975%를 기록, 구제금융을 받는 마지노선인 7%에 근접할 정도로 시장의 신뢰도는 급강하하고 있다. 여기에 은행시스템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충격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경제분석가들은 스페인 근로자들의 임금이 경쟁력 회복을 위해 향후 5년간 11% 삭감돼야 한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스페인 차기 정부는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지출 축소를 통한 비용 절감과 전 분야에 걸쳐 개혁을 감행해야 한다.

라호이 대표는 이미 총선 유세 과정에서 연금과 건강보험, 교육 부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손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AP통신 등 외신들은 라호이 차기 총리 정부가 시장과 유럽 주변국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초반에 강력한 정책을 내놓는 ‘충격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같은 긴축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의 대폭 감축은 물론 경기침체와 추가 실업률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이 같은 고강도 희생을 국민들이 견뎌낼 것인가이다.

미구엘 아리아스 국민당 선거기획본부장도 “스페인은 모든 희생을 감행해야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공공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으며, 그것을 갚아야 하고, 공공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를 아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도 우파 정당의 집권으로 노동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또 지난 5월부터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시위대는 지난주 새 정부를 “은행가를 위한 정부”라고 꼬집고 교육 등 공공분야 재정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벌써부터 긴장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