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 중도 우파 국민당(PP)이 압승을 거두며 7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 ‘정치이념’을 넘어선 ‘현실적 경제’의 힘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이로써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이후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까지 유럽의 문제아로 꼽히는 유럽 피그스(PIIGS·일명 ‘돼지들’)가 모두 경제 문제로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99% 개표가 진행된 21일 새벽 현재 마리아노 라호이(56) 대표가 이끄는 중도 우파 국민당은 44.6%를 얻어 28.7%에 그친 집권 좌파 사회당에 압승을 거뒀다. 이에 따라 국민당은 총 350석 중 186석을 획득했고, 사회당은 110석에 그쳤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등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채무위기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한복판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가운데 실시된 이날 스페인 총선은 3년 넘게 지속되는 경제위기와 21.5%를 넘는 실업률로 인해 집권 여당이 참패할 것으로 일찌감치 예상돼 왔다. 유로존 경제 4위국인 스페인을 경제위기로 몰아놓고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사회당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장에서 압승을 이끌어낸 라호이 대표는 “심각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기적이 없다. 우리 모두 희생을 감내해 유럽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의 문제해결사가 되자”고 호소했다. 차기 총리에 오를 라호이 대표는 총선 유세 과정에서 연금, 건강보험, 교육 부문을 제외한 모든 것을 손질하겠다는 강력한 경제 개혁 의지를 밝혀 왔다.

이에 앞서 12일 이탈리아에서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각종 스캔들로 경제위기를 증폭시키다 결국 물러난 뒤 16일 전 유럽연합(EU) 집행위원이자 저명한 경제학자인 마리오 몬티 새 총리 정부가 출범했다. 특히 몬티 정부는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 이념 갈등과 정당 간 다툼을 우려해 정치인을 완전히 배제하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무형 전문 관리로만 내각을 구성해 주목을 받고 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1·2차 구제금융안 이행을 둘러싸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에 달했던 그리스도 지난 11일 루카스 파파데모스 신임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 신민당과 극우 정당 등을 포괄한 과도 연립정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유라시아그룹의 정치분석가 안토니오 바호소는 21일 AP통신에 “유럽 재정 위기 속에서 국제 사회와 시장에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느냐가 정권과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고 있으며 이들에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시장의 신뢰를 빨리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