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8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의 대형 쇼핑몰을 찾은 청소년들이 빼빼로 데이 코너에서 선물을 고르고 있다. 신창섭기자 bluesky@munhwa.com

8일 오후 2시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대형마트 매장. “2011년 11월11일. 천년에 한 번! 평생 한 번뿐인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 빼빼로 데이(11월11일)를 사흘 앞두고 매장 입구와 식료품 코너 여기저기에는 벌써 대형 플래카드와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마트 측은 빼빼로 상자를 이용한 아치형 문을 만들어 놓기도 했고, 아예 마트 한쪽엔 빼빼로 데이 관련 상품을 모은 진열 부스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진열 부스는 ‘빼빼로 길’을 방불케 했다. 10m가량 이어지는 복도 양옆에는 롯데와 오리온, 해태제과에서 내놓은 각종 빼빼로 관련 상품이 키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천장과 벽은 형형색색의 풍선과 하트 모양 조형물로 꾸며져 마치 큰 기념일을 앞둔 듯한 느낌을 줬다. 본래 판매되는 1000원짜리 빼빼로도 있었지만 재포장하거나 새로 전시된 상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빼빼로를 10개 단위로 묶어 팔거나 플라스틱 원형 박스와 바구니로 재포장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40개의 빼빼로 상자를 모아 3만원에 가까운 가격에 판매하기도 했고 빼빼로가 아닌 상품들도 긴 모양의 상자에 담겨 팔리고 있었다. 이 마트는 빼빼로와 함께 선물 및 1만원에 육박하는 포장 상자, 포장지, 양말 등을 함께 전시해 마케팅을 벌이고 있었다. 자기 몸만 한 대형 빼빼로 상자를 집어 카트에 넣고 있던 김진현(4)군은 “빼빼로 데이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유치원에 가서 여자 친구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6일 오후 3시에 찾아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주변 편의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편의점 입구마다 빼빼로 데이를 알리는 표지판들이 이미 설치돼 있었고 좁은 공간임에도 계산대 앞에는 어김없이 빼빼로 진열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진열대에는 빼빼로뿐만 아니라 초콜릿 제품들이 재포장, 전시돼 있었고 빼빼로와 과자류가 섞인 선물 바구니나 꽃다발도 2만 ~ 4만원의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한 편의점업체는 추첨을 통해 인기 가수의 애장품이나 상품권, 티켓 등을 11명, 111명 등에게 주는 행사를 하며 빼빼로 판매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편의점에 들어오는 손님 중에서 주로 10대 여고생들이 상품을 구매했지만 대학생 커플이나 중년 남성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편의점에서 만난 김모(41)씨는 “딸이 엄마한테 꼭 선물하라고 독촉을 하더라”고 말했다.

숫자 1이 6번 겹친다는 2011년 11월11일 일명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빼빼로 데이 붐이 과열되고 있다. 마트나 편의점 등의 유통업계는 빼빼로 데이 판촉에 여념이 없었다. 한 마트 관계자는 “빼빼로 데이는 일 년 중 과자류 판매가 가장 많은 날로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보다 대목”이라며 “올해는 전년보다 30% 정도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90억원 상당의 물량을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귀띔했다. 그는 “이번 주 목요일부터 130여개 매장마다 별도의 부스를 갖춰 빼빼로 데이 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편의점업체 관계자도 “올해는 수능이 겹쳐 10 ~ 20% 정도 매출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6400개의 매장에 부스를 마련해 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빼빼로 데이는 1990년대 중반 부산지역의 여고생들에 의해 시작된 날로 알려져 있다. 친구들끼리 저렴한 가격의 빼빼로를 서로 선물하면서 우정을 확인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순수한 의미의 빼빼로 데이는 사라졌다. 제과업계와 유통업계가 빼빼로 데이를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빼빼로 데이는 각종 판촉과 광고가 난무하는 기업 주도의 행사가 돼 버렸다. 제과업체 관계자는 “이 시기에 연 빼빼로 매출의 절반이 나간다”고 언급했다. 온라인에서도 상술은 계속됐다. 단순히 빼빼로를 재포장했을 뿐인데도 본래 가격에 많은 웃돈이 얹어졌다. 6만원이 넘는 빼빼로 모음 선물 상자는 물론이고 꽃과 함께 포장돼 10만원에 육박하는 상품도 판매되고 있었다.

업계의 장삿속에 소비자들은 과도한 마케팅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학원생 임황규(29)씨는 “챙겨야 할 날이 하나 더 늘어났다”며 “빼빼로를 하나만 살 수도 없으니 적어도 2만 ~ 3만원씩 과도한 소비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28)씨도 “빼빼로가 오래된 유물도 아닌데 1000년에 한 번 온다는 것은 그야말로 도가 지나친 상술”이라며 “어린 학생들의 소비욕을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생 박은경(여·24)씨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라는 말에서 기업의 장삿속이 훤히 보여 웃음이 났다”면서도 “업체가 마케팅 수단으로 만들어 낸 날인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챙기니까 나도 안 살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따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여·25)씨는 “빼빼로 데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며 “이곳저곳에서 광고를 하니 몇 개쯤은 사게 된다”고 밝혔다.

유민환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