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장나라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몸을 낮췄지만, 그는 데뷔 1년 뒤부터 생활처럼 자연스럽게 남을 위한 기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미용실에서 만난 장나라(30)는 얼굴보다 더 큰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손질받고 있었다. 얼굴은 무척 수척해 보였다. ‘훅’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야윈 체구를 간신히 지키고 있는 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무장한 ‘의지’였다. 16일 할머니의 발인을 지켜본 뒤 이날 중국으로 떠나야 하는 그의 심경은 복잡했다.

“중국에서 할머니 부고를 들었을 때, 제가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어요. 한국에 올 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거든요. 다쳐도 금세 낫고, 식사도 저보다 잘 하셔서 금세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렇게 가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장례식 가기 전에 할머니 얼굴도 만져봤는데, 아직 안 돌아가신 것 같아요.”

그에게 할머니는 어머니와 동의어였다. 어릴 때부터 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키운 건 할머니였기 때문. 장나라는 “내 인생에서 할머니를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10여분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로부터 영향받은 게 있다면”이란 질문을 던질 때, 그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힘들다”며 “그만하자”고 했다.

마무리 손질을 위해 자리를 옮긴 1층에서 장나라는 한결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예’ ‘아니오’로 간단하게 했던 답변은 단문, 복문으로 점차 길어졌고, 그 특유의 귀여운 웃음도 되찾았다. 인터뷰 전 소속사에 부탁해 건네받은 보도자료 중 눈을 어지럽게 한 대목이 ‘주요 활동’이었다. 활동 내용 중 가장 많은 것이 기부였는데, 얼마나 많은지 일일이 챙기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작정하고 기부 활동 문제를 꺼내기로 했다. 하지만 장나라는 “기부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며 다시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 얘기도, 기부 얘기도 안 하면 무엇을 얘기합니까.

“중국 활동 얘기하면 안 되나요? 음, 그럼 기부 얘기는 조금만 해요. 그런 얘기할 땐 낯이 붉어져서….”

―자선활동으로 기부한 금액이 무려 130억원가량 되네요.

“제 이름으로 기부한 금액은 그렇지 않아요. 그 액수는 저와 팬들, 제 이름으로 기부를 한 이들까지 포함된 금액이에요.”

장나라의 아버지 주호성(본명 장연교·61)씨가 홈페이지 나라짱닷컴을 통해 밝힌 기부총액은 130억원. 이 중 장나라가 국내외에서 개인으로 기부한 액수가 50억원가량이고, 팬과 기업 찬조 기부 등을 합친 총액이 130억원 정도다. 그의 기부가 특별한 것은 어느 순간 갑자기 이뤄진 ‘단타성 후원’이 아닌 데뷔 시절부터 쭉 이어져 온 ‘체화된 생활’이라는 점이다.

―2001년 데뷔 후 1년 만에 국제기아대책기구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되고 바로 기부가 시작됐는데요.

“부모님은 돈 벌면 받은 만큼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어요. 특히 엄마가 심했죠. 그러다 보니까, 국제기아대책기구와 연결도 되고 그랬어요. 제가 그렇게 누구를 직접 마주쳐서 살갑게 대하는 성격이 못 돼요. 겁부터 나거든요. 이를테면 어떤 아이에게 뭘 해주고 그랬는데, 혹시 다음에 제가 그를 기억하지 못하면 그 아이가 얼마나 상처받겠어요. 꾸준한 마음을 못 가질까 봐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아요. 그래서 직접 부딪치는 일은 잘 못해요.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나요.

“엄마는 어릴 때부터 늘 행동으로 보여줬던 분이에요. 힘든 분들은 못 보고 지나치셨죠. 무거운 걸 들고 가는 어른이나 리어카 끌고 가시는 할머니, 식당에서 남이 먹던 것 드시는 분들을 위해 항상 옆에서 도와주셨어요. 엄마가 항상 그랬기 때문에 제가 여유가 되면 도와야 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데뷔 1년 뒤에 조금씩 벌기 시작해서 기부를 시작했는데, 진짜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하면 좀 민망한데, 기부하면 자기만족감이 커요. 이만큼 벌어 그만큼 기부했다는 자기 만족이 있는 거죠.”

2001년 5월 데뷔한 장나라는 이듬해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 출연료(4000만원)와 팬들 성금을 더해 국제기아대책기구에 전달했다. 이 기부를 시작으로 장나라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액수를 늘리며 기부했다. 금융회사 CF로 번 2억원을 모교인 중앙대 발전기금으로 쾌척했고, 2004년부터 나라영상클럽, 나라짱후원회 등 팬클럽과 함께 장애우 시설 후원에 동참하기도 했다.

―매해 기부 활동을 멈춘 적이 없는 것 같은데, 2006년에만 없네요.

“저도 힘들 땐 못 하죠. 전 단순해요. 여건이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어려울 땐 내 것을 희생하며 도울 수 있는 적극적인 기부자는 아니에요. (김)장훈이 오빠처럼 자기 것을 줄이고 뭔가를 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제 욕심도 있으니까요. 저는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엄마랑 아빠랑 좋은 집에서 사는 게 좋고, 뭔가 가족이 더 윤택했으면 좋겠고 그래요.”

―그래도 어려운 이웃이 생기면 바로 바로 돕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즉흥적일 정도로 적극적인 아이는 아닌데,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할 땐,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있긴 있어요.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정면으로 맞닥뜨릴 땐 방법이 없잖아요. 하지만 제가 기본적으로 쥐고 있는 건 안 놓아요. 어릴 땐 집이 넉넉하길 바랐어요. 사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남들이 하는 걸 우리가 못 하면 늘 ‘조금만 더 부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어요. 엄마가 키도 안 맞는 열악한 주방에서 일하는 걸 보면 엄마 키에 맞는 싱크대를 해주고 싶기도 한 그 정도의 부유함을 늘 원했어요. 연극인인 아빠도 돈 때문에 쪼들리는 걸 봤으니까, 이보다 좀 더 부유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죠. 지금 솔직히 충분히 부유해졌고,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 기준에서는 되게 넘치는 부유함인데, 남들 기준에서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전 아주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욕심은 있어요. 하지만 물질적 풍요로움 때문에 제 가치관이 변하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기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북한 여성들이 생리용품을 쓰는 생활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옛날 식으로 천 기저귀를 쓰는데, 색이 바래 비위생적인 상태가 돼도 계속 이용한다는 거예요. 사실 마트에 가면 널린 게 생리용품이잖아요. 그 설명을 듣고 광고 모델료를 생리용품으로 바꿔 전달했어요. 항상 감사한 게 제가 뭘 하려고 하면 늘 도와주려고 하는 분들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 분들이 사실 저보다 더 많이 도와줬어요.”

그의 기부는 국내를 넘어 중국과 북한에서도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경우 중화자선총회의와 손잡고 콘서트 수익금 대부분을 현지 극빈층과 사회시설에 기부했다. 또 200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나라애심기금’을 현지에 설립, 콘서트 수익과 출연료 기탁 등으로 모은 성금을 백혈병 환우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2009년 1월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 피해 때는 의류회사의 협찬으로 80억원어치의 오리털 점퍼를 건넸다. 앞서 2005년 장나라는 중국언론으로부터 ‘가장 따뜻한 한류’로 선정됐다. ‘북한 돕기’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우유 CF 출연료 2억원과 제지회사 CF 출연료 3억원을 각각 분유와 생리대로 받아 모두 북한 어린이와 여성을 위해 내놓았다.

―2004년 중국에 처음 진출할 때 사기도 많이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금은 중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찬사를 받는 한국 연예인으로 거론됩니다.

“2004년 중국에 진출할 때, 그간 한국에서 번 돈 거의 다 썼어요. 사기도 당하고 빚도 졌어요. 하지만 철저히 현지화 전략으로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니까 벗으로 봐주시기 시작했어요. 그래서인지 저를 알아보는 중국인들은 ‘와’ 하면서 탄성을 지르지는 않지만, 잔잔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동네 동생, 누나 같은 그런 이미지죠. 그렇게 쌓아온 이미지 때문에 저도 중국인들을 가까운 이웃이나 벗처럼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대 꽃다운 청춘을 중국에서 보낸 장나라는 올해 어느덧 30대 문턱에 들어섰다. 21세 때 만든 좌우명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자’는 30세에 이르러 ‘부끄럽지 않게 영리하게 살자’로 바뀌었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제가 고소공포증이 심한데, 그게 없어지면 그리스나 이탈리아같이 먼 곳으로 여행가고 싶어요.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에 종로 같은 곳에 가서 수많은 인파에 휩쓸리고 싶어요.” ‘기부 여왕’의 꿈은 의외로 단순하고 소박했다.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