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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의 훤칠한 키에 매끈한 몸매, 서글서글한 눈매의 서구형 미인 왕지혜는 ‘차도녀’의 전형이었다. 드라마 ‘친구’의 진숙, ‘개인의 취향’의 인희,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의 혜미 등 그가 전작들에서 맡았던 역할도 모두 그 틀 속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최근 종영한 SBS‘보스를 지켜라’에서 제대로 망가졌다. 그가 맡은 서나윤은 곱게 자란 재벌 2세 처녀로 구김살은 없지만 빈틈이 많아 나섰다하면 체면을 구기는 푼수 캐릭터다. 이기적이지만 얄밉지 않고 사고뭉치지만 민폐끼치고는 못사는 의리파이기도 한 서나윤은 배우 왕지혜를 만나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거듭났다.

“연기변신이 놀랍다”는 인사성 멘트에 “나도 내가 이렇게 잘할지는 몰랐다”며 푼수처럼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서나윤이었다.

“지헌의 옛 연인인 나윤이 은설과 라이벌 관계가 되는 극 초반에만해도 그렇게 웃긴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4회때 수위 조절을 못하고 제가 너무 오버했는데 그 이후 대본이 갈수록 코믹하게 나왔어요. 제게 이런 변신의 기회를 준 것도 감사한데 카메라에 밉상맞지 않고 예쁘게 잡아주셔서 감독님께 더욱 감사하죠.”

그가 ‘변신’에 집착한 이유가 듣고 보니 처절했다. 그저 이것 저것 해봤으니 다른 걸 해보고 싶은 욕심도 아니었고, 이미지 고착화를 염려해서도 아니었다. 데뷔 10년차인 그가 겪은 충격적인 일 때문이었다.

“2007년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을 끝낸직 후 길거리를 걸어가는데 드라마 제작자라며 캐스팅을 제의해왔어요. 이미 데뷔한지 6년이 지난때였는데 제게 접근해왔죠. 정말 황당했고 커다란 상처가 됐어요. 그게 어디 못알아본 사람 탓이겠어요?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제 탓이죠. 그래서 이번엔 180도 다른 연기로 무조건 튀고 싶었어요.”

“망가지더라도 튀자”고 마음 먹은 그의 ‘투지’는 뻣뻣 웨이브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극중 긴 팔다리를 엉성하게 휘저으며 투애니원의 ‘내가 제일 잘나가’를 엉망으로 부르는 모습은 시청자들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드라마 시작 전 제작진과 MT를 갔는데 ‘친구’에서 제가 노래를 했기 때문에 다들 제가 노래를 잘 하는 줄 알고 노래를 시키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고음불가예요. 또 운동신경은 있는데 춤만 추라 그러면 막대기가 돼죠.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씨가 막춤 추는 걸 따라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요.”

그가 ‘보스를 지켜라’에서 남긴 또 하나의 명장면은 ‘우유 키스신’. 나윤이 사랑하는 무원(김재중)의 입술에 묻은 우유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은후 기습 키스를 날리는 장면으로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시크릿 가든’이후 최고의 로맨틱 키스신으로 꼽히기도 했다.

“키스신 찍다 죽을뻔 한 배우는 아마 저밖에 없었을거예요. 제가 우유나 유제품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어 대본을 보고 해야할지 고민이었지만 두눈 꼭 감고 감행(?)했죠. 유제품이 조금만 몸에 닿아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호흡이 힘들어지니까 걱정됐죠. 하지만 그 사실을 안 재중씨가 센스있게 재빨리 키스신을 마무리해 무사히 마쳤어요.”

튀겠다는 목표를 향해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을 쏟아부은 그는 ‘보스를 지켜라’로 결국 시청자들의 가슴에 깊숙이 각인돼는 결실을 얻었다.

“이젠 길거리에 가도 인사를 건네 오는 사람이 있다”며 행복하게 웃는 그는 “하지원처럼 액션과 멜로를 넘나드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미영기자 myp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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