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활보호에 유난히 민감했던 스티브 잡스의 사망을 계기로 그동안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 생존 시 잡스는 기발한 천재이기는 해도 괴팍한 에고이스트, 워커홀릭로 많이 알려졌지만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는 로맨틱한 면모를 가지고 있고, 수다 떨기도 좋아했던 재미있는 인물이었던 듯하다.

잡스와 친분을 나눴던 유명 정보기술(IT) 전문언론인들은 6일 AP통신 등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알았던 잡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잡스가 살아있을 때에는 철저한 ‘오프 더 레코드’ 요구에 따라 기사에 한 줄도 쓰지 못했던 에피소드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저명한 IT 평론가 윌트 모스버그는 주말마다 잡스가 자신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1시간 반 넘게 온갖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수다를 떠는 통에 곤혹을 치르곤 했었다고 회상했다.

주말 이틀 동안 잡스가 밤낮 가리지 않고 대여섯번씩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아내가 불평하기까지 했다는 것. 모스버그는 “잡스는 디지털혁명에 대해 떠들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꿔 애플 신제품이 끔찍한 수준이라고 불평을 늘어놓는 등 온갖 말들을 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그의 엄청나게 넓은 관심분야와 열정에 감탄하곤 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데이비드 포그 역시 잡스의 ‘전화공세’를 당했던 언론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잡스가 집은 물론이고 내가 다른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 식당으로, 심지어 가족과 함께 지내는 휴가지에까지 전화를 걸어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그는 늘 내게 큰 그림을 볼 줄 모른다고 야단치곤 했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IT 전문가 라이언 테이트는 지난해 5월 한밤중에 e메일로 잡스와 대판 싸운 적도 있다. 그는 “애플 광고에 밥 딜런 노래가 사용된 데 대해 비판했던 게 우리가 싸운 이유였다”며 “사람들은 애플사의 최고경영자인 잡스가 광고 노래 하나를 놓고 입씨름을 벌인 걸 알면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잡스에게도 로맨틱 가이의 면모는 있었다. 잡스는 워튼경영대학원,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여성 로렌과 사랑에 빠져 1991년 결혼했다. 결혼 전 잡스는 로렌과의 데이트를 위해 회사의 중요한 회의를 빼먹기도 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회사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하다가 문득 ‘오늘 세상이 끝난다면 마지막 순간을 회의하며 보낼 것인지 로렌과 함께 할 것인가’ 란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순간 즉시 차를 빼서 로렌에게 가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잡스가 젊은 시절 마약의 일종인 LSD를 몇차례 흡입한 적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잡스는 “LSD를 시도한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몇가지 일 중 하나”라며 “그 덕분에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LSD를 맨 처음 만들어낸 스위스의 화학자가 잡스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LSD가 당신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을 알고 있다”며 “LSD의 테라피효과를 좀더 연구하기 위해 도움을 달라”며 기부를 요청했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다. 잡스가 그에게 기부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잡스는 빌 게이츠에 대해 “생각의 폭이 너무 협소하다”며 “그가 LSD에 한 번이라도 빠져봤다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한 적도 있다.

생부로부터 시리아 혈통을 이어받은 잡스는 젊은 시절 인도 철학에 경도된 적이 있으며 불교에 강한 공감대를 느껴온 것으로 보인다. 1991년 로렌과 결혼했을 때도 불교 승려가 주례를 맡았을 정도다.

컬럼비아대 불교철학 전문가인 로버트 서먼 교수는 AP통신 등과 인터뷰에서 “잡스는 비록 정식의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철학, 티베트불교에 대해 박식했다”며 “간결한 디자인의 애플 제품은 그가 선불교로부터 받은 영향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